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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Jan 20. 2022

하루종일 다이닝룸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블로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드디어 리모델링을 끝냈다는 소식을 알리고나니 이제부터는 무엇을 써야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짜피 이제까지 작업기록들도 실시간으로 작성한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경험들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것이기때문에 공사는 끝났더라도 빠뜨린 내용을 다루거나 시간이 지나고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감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다이닝룸 사전적 정의

주택에 식당을 따로 둘 수 없을 때 거실의 일부에 식탁 세트를 놓아 식당을 겸한 거실을 말한다.


저는 이제까지 이 곳을 '거실 겸 주방' 또는 '거실/주방'이라고 불러왔었는데요.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긴하지만 거실처럼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면서 음식을 만들거나 같이 먹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와서 이 곳을 다이닝룸이라고 불러서 찾아보니 위와같이 몇년전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하는 그런 용어였습니다. 1인가구가 많아지면서 좁은 평수의 집 또한 수요가 늘어나고 거실과 주방을 따로 만들 공간이 없으니 두 개가 합쳐진 그런 형태가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요? (요즘 유튜브 '셜록현준' 채널을 자주 봐서 그런지 유현준 건축가처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ㅎㅎ)


'다이닝룸'의 사전적 정의에서는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의 기능은 빠져있지만 공간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의미가 통한다고 느껴져서 그때부터 저도 이 곳을 '다이닝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림주간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꽤 많은 분들이 다이닝룸을 좋아해주었습니다. 지금의 계절이 겨울이라서일까요? 추운 바깥 활동보다 따뜻한 실내에서 시골의 전망을 감상하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을 선호해서 그러는걸까요. 주변에 갈만한 산책코스나 맛있는 식당 몇 군데를 알려줘서 사람들이 다이닝룸을 떠나질 않습니다. 4평도 안되는 이 곳에서 요리를 하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유튜브를 봅니다. 가끔 낮잠을 자러 방에 갔다가 두세시간 뒤에 다시 다이닝룸으로 부스스하게 들어와 또 멍때리기를 반복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조금 심심하진 않을까해서 밖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하면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며 거절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방 또 밥때가 되고, 일어서서 두 발자국만 움직이면 바로 냉장고와 조리대가 있어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곳에 빠져드는 이유 중엔 둑어둑한 분위기도   하는  같습니다. 저는  곳을 계획할  양쪽에 있는  방과는 분위기가 분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이 밝은 느낌이라면 다이닝룸은 어둡게 만드는 것이 전체적인 인상을 가장 다르게 만들  있습니다. 칼라를 구성하는  가지 요소는 명도, 채도, 색상인데  중에서 가장  효과를   있는 것은 명도입니다. 세상에 빛이 없으면 채도와 색상은 구분조차   없으니까요. 그만큼 밝은 느낌의 방과는 뭔가 확실하게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 찾았던 이미지가 바로  사진입니다.


출처 : https://carmeonhamilton.com/blog/one-room-challenge-the-reveal


짙은 녹색의 벽으로 인해서 세면대와 변기, 그리고 하부장이 선명하게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물건들과 벽의 명도 차이는 크지만 녹색이 채도가 기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뒤로 슬며시 빠져주며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자상함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저는 별 기대없이 이 사진을 타일업체 사장님께 보여드렸는데 정말 똑같은 타일을 구해주셨고 여기 사진처럼 타일의 방향도 세로로 길게해서 주방 싱크대 앞쪽을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화장실 벽타일을 무난하게 골랐고 방 역시 무난하게 밝은 색의 민무늬 벽지를 골랐기 때문에 집의 어느 한 부분은 임팩트가 있는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강렬한 주인공은 결국 다이닝룸이 되었는데, 막상 공사현장에 짙은 녹색의 타일들이 도착해 있는것을 보니까 내가 과연 잘한것인지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싱크대 앞쪽에는 짙은 녹색의 타일들을 붙였고 그 외에는 모과나무방과 같은 밝은 벽지를 붙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씽크대업체에서 주문제작한 상부장과 하부장이 설치되었고 냉장고와 세탁기같은 필수품들도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위 오른쪽 사진이 거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예전에 상상했던 강렬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냥저냥 들쑥날쑥한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앞부분, 씽크대 전면 모습만 한정해서 보자면 그런대로 인상적인 느낌이 살짝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때, 일산에 사는 누나네 가족이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누나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슬쩍 물었습니다.

"여기말야.. 뭔가 좀 밋밋하지 않아? 앞부분만 녹색이라 뭔가 되다만 느낌이야"

"그래? 난 괜찮은데, 여기만 이 색이라서 더 강렬해보여"


경사면의 벽지위에 비슷한 색깔의 아크릴 물감을 만들어 한번 칠해봤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다이닝룸 전체가 이 타일과 같은 칼라가 된다면 통일감도 있으면서 지금보다 훨씬 강렬하게 될 것 같다.. 고 느껴지긴 했지만 공사와 더위에 지쳤고 체력이 점점 고갈되가면서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우선 완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현상태와 타협하려는 욕망이 서로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모습을 전체적으로 관찰해보니 전면의 짙은 녹색영역을 천장의 흰 경사면이 파고 들어간 듯 보였습니다. 이 부분만 시험삼아 비슷한 색깔로 칠해보자. 애자일한 접근을 이 곳에서도 사용해보기로 했습니다. (애자일에 대한 설명은 <애자일 방식으로 한옥 리모델링하기>에 있습니다) 결과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흰 상부장이 동일한 배경 속에 있으니 훨씬 안정감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생각보다 벽지위에 물감이 잘 발라지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도배용 벽지는 일반 종이와는 달라서 혹시나 물감이 잘 발리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다 좋지않은 일이 터졌습니다. 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복병을 만난것이죠. 짜증이 막 밀려왔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빛을 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누나와 길게 통화하면서 크게 무너지지 않으려 애를 썼고, 이럴때는 강렬한 한방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어짜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아예 없지도 않은 그런 문제였습니다. 이 고민을 잊으려면..


"나 여기 전부 다 같은 색으로 칠해버리려고"

"오 정말? 괜찮겠어?"


어 그냥 확, 다 칠해버릴꺼야!


근심을 잊기위해 시작한 작업은 역시나 저를 완전 몰입하게 만들었고 이틀만에 다이닝룸의 모든 벽지에 타일과 같은 색으로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앞서 실험했던 경사진 좁은 부분은 아크릴물감으로 칠했지만 이 전체영역은 수성페인트 3가지 칼라를 조합해서 작업했습니다. 아크릴로 하지 않은 이유는 비싼 가격때문인데요. 혹시라도 나중에 부분적으로 벗겨지거나 색이 바래져 덧칠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충분히 많은 양의 물감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대만족. 작업을 하면서 근심도 잊을 수 있었고, 순간 마음의 밸런스가 기우뚱거릴 뻔 했지만 이 작업으로 인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칠이 완성된 모습입니다. 바닥 톤이 조금 붕 뜨는데 조금만 더 어두웠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짙은 갈색의 테이블과 검정 팬던트와 어둡고 채도가 낮은 청녹색이 잘 어울립니다.


예전에 <화장실 찬가>를 공유하면서 죽림주간 화장실(욕실)을 계획할 때 어떤 부분들을 신경썼는지 포스팅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다이닝룸을 이야기했듯이 다음에는 마당이나 감나무방/모과나무방, 그리고 주차장이나 뒷담까지도 포스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문객들이 점점 많이 다녀가면서 이 곳의 공간과 물건들은 형태가 달라지거나 의미가 새롭게 입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것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면서 앞으로 쌓여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그 중에서 재미있는 부분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다이닝룸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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