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화장실을 좋아합니다.
밥만 먹고 금새 나오는 식당은 상관없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머물게되는 술집이나 카페에 갈때는 화장실이 좋은 곳을 기억해두고 다음에 그 곳을 다시 찾습니다. 카페는 거의 대부분 화장실이 실내에 있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데 반해, 고기집이나 술집 중 절반은 '나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있는' 외부 공용화장실인 경우가 많고 그럴경우 높은 확률로 관리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왠만하면 참아버리고 차라리 귀가길에 있는 지하철 화장실을 가곤 합니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오래 머무르거나 중요한 일을 하는것은 아닙니다. 볼일을 보고는 심지어는 거울도 잘 들여다보지 않고 간결하게 나오는 편인데 그냥 좋은 화장실은 들어갔을 때 순간 기분을 좋게 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1.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의 조명
저는 천장에 달린 쨍한 형광등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할 때나 휴식할 때도 마찬가지라서 굳이 화장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은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보자면, 쨍한 형광등은 공간을 하얀 도화지같은 2차원의 평면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시선이 많이 분산되어 오랜시간 머무르면 피로함이 느껴집니다. 모든 사물이 날 좀 봐달라고 작은 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달까요? 이와 반대로 노란 스팟라이트는 공간에 입체감이 생기면서 드라마틱해지고 집중해야 할 것들만 눈에 들어오니 오래있어도 덜 피곤한 느낌입니다. 이게 화장실과 무슨 상관이냐고, 볼일을 보는데 너무한거 아니냐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그냥 딱 들어갔을 때 그런 분위기를 선호한다는 말입니다.
2. 좋은 냄새까진 아니더라도
냄새에 너무 민감하진 않지만 싸구려 방향제가 뿜어나오는 공용화장실에서는 볼일을 보기가 괴로워 숨을 참게됩니다. 물론 고약한 냄새보다야 낫지만 차라리 환기가 잘되는 방향제 없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3. 핸드타올/건조기, 세정제
터미널이나 상가같은 공용화장실에서는 함부로 막 쓰거나 뒷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런 옵션을 가져다 놓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한정된 손님만 들어오는 카페의 화장실에서는 이런 옵션들이 잘 갖춰져있는 편입니다. 좋은 향기가 나면서 뽀송뽀송해진 손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이런 옵션들도 좋은 화장실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고체비누도 많이 보였는데 요즘엔 바이러스 전염의 염려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4. 안정감 있는 구조
아직도 가끔 보이는 남녀공용 화장실은 볼일을 보기가 너무 불안합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죠) 또, 출입문이 열려져있고 화장실 내부가 일부 보이는 공공화장실 역시 뭔가 불안해집니다. 화장실은 최고로 프라이빗한 공간이기 때문에 안정감 역시 최고 수준으로 갖춰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이 넓지않고 비용을 적정수준으로 맞춰야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만들진 못하더라도 화장실을 애착하는 제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설계하는 화장실이기에 저절로 마음속에서 정해진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방 2개를 한 가족이 지낼수도 있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두 팀이 머무를수도 있으니 화장실 역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부엌은 약간의 공공성을 띄고 방은 우리의 공간이라면 화장실은 순도 100%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목욕탕을 예전처럼 가지 못하는 요즘, 집에서 욕조의 활용도는 다시 높아질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욕조 1개는 무조건 넣고싶어서 욕조 사이즈를 먼저 체크해본 뒤에 화장실 크기를 정했습니다. 방B의 화장실은 한옥 구조상 너비가 정해져 있었지만 방A의 화장실은 너비를 임의로 정해야 했었는데요. 욕조를 검색해보니 이동식 욕조가 아닌 시공형 욕조는 대부분 가로사이즈가 1400mm이 넘지만 바스코리아에서 1200mm인 작은 사이즈의 욕조를 찾아냈고 이 욕조에 맞춰 공간 너비를 정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변기와 세면대가 어떤 순서로 배치되어있는지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주거해부도감>이라는 책을 보고 어느정도 감을 잡게 되었는데 이 저자는 문을 열자마자 변기가 바로 앞에 있는것을 싫어해서 그런 설계를 피하라고 했지만 저는 문-변기-세면대-샤워기(욕조) 순서로 배치했습니다. 국내 화장실의 경우 이 3개가 같은 공간에 있는데 물을 많이 쓰는 세면대와 샤워기가 붙어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기준에서는 문을 열었는데 바로 변기가 보인다고 해도.. 특별히 나쁘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몇년 전에 일본 여행에서 건식 변기와 바깥에 나와있는 세면대를 경험해보고 저도 건식 화장실을 해보고 싶었지만 공간이 협소해서 포기했습니다. 변기가 가장 첫번째 위치에 있으니 단을 만들어서 변기자리를 다소 건식으로 하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냥 포기했습니다. 큰 미련은 없지만 나중에 한번 더 리모델링을 하게된다면 그때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 용어는 이번에 리모델링을 계획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대세인 모델인데 확실히 예전 모델보다 깨끗하고 심플한 느낌이 있어 좋았습니다. 거울은 원형이 나을지, 다른 모양이 나을지 끝까지 고민이 됐는데, 타일 시공업체 사모님께 묻고나서 원형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타일고르기가 가장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타일은 종류가 너무 많고 한번 정하면 바꿀수가 없는데 화장실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벽은 무난한 밝은 아이보리 무광타일로 무난하게 하는 대신, 바닥엔 다소 복잡한 패턴이 있는 타일을 골랐습니다. 대신 부엌 전면에 있는 타일은 다소 어두운 녹색으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이런 결정을 할때는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가 영향을 많이 끼치는데, 그런 레퍼런스 이미지들은 여러 인테리어 요소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서 멋지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공업체는 읍내 가까운 곳에서 찾다가 결국 온라인에서 영주고고타일이라는 곳을 찾아 진행했습니다. 저의 여러 조건들을 잘 상담해주시면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냈고 시공 전에 3번 미팅하고 메세지와 통화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공은 부엌 타일까지 3일이 걸렸고 고택이라 어려운 난관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만 잘 돌파해서 지금은 시공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다른 작업, 다른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