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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Dec 02. 2021

애자일 방식으로 한옥 리모델링하기


10년전, 처음 만난 애자일


2011년, 저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UI디자이너로 취업하게 되었는데, 그 회사는 건(Gun) 시뮬레이션 앱으로 미국시장에서 중박을 터뜨린 곳이었습니다. 앱은 상당히 간단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에 총의 옆모습이 그려져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총알을 넣고 장전을 해서 방아쇠를 탭하면 사운드와 함께 발사되는 효과가 나오는 식인거죠. 그게 다야? 라고 의아해 하실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것이 히트를 쳤습니다. 2011년은 스마트폰이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무슨 앱이든 나오기만 하면 신기해서 써보던 그런 풍요로운 시대였으니까요. 다른나라보다 총을 유독 좋아하는 미국에서, 때마침 어떤 인플루언서가 장난으로 올린 유튜브에 이 앱이 나오자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이 앱으로 돈 좀 버나 싶더니 2년을 가지 못하고 경쟁사에 밀려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회사가 히트작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 아세요? 미국과 캐나다 시장과 국민들의 취향과 소비패턴을 면밀히 분석했거나.. 아니면 총을 소유하고 싶지만 실제로 갖기 힘든 미국의 중고등학생을 핵심 고객층으로 설정했던 결과였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재밌는 앱을 만들고 싶은 사람 몇명이 모여서 한달에 앱 하나씩, 그냥 재밌는거라면 일단 빨리 만들어서 마켓에 올려보자고 해서 만든것입니다. 예전에 PC게임 시대, 더 예전의 콘솔게임 시대에서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과 스피드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기본 사이즈가 컸기때문에 기획하는데만 몇달이 걸리고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테스트하며 버그를 잡는데만 몇달, 몇년은 걸렸으니까요.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겨우 완성해서 시장에 내놓으면 유저들이 기다렸다는 듯 게임을 해줄까요? 그럼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대다수의 게임들이 아무런 비명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앱 세계는 (지금이야 꽤 복잡해졌지만) 너무나 단순해서 한달에 하나를 뚝딱 만들어버리는게 가능했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서 '애자일 개발방식'을 만났습니다. 스타트업 정신으로 무장한 초기멤버들이 히트작을 하나 내긴 했지만 어쩌다 운좋게 얻어걸린 결과였기에 자만하지말고 더 정진해보자는 뜻에서 개발자들을 매니징해줄 수 있는 외부전문가를 모셔왔는데, 그 분들이 애자일 방법론 전도사분이었습니다.


애자일에 대한 역사와 정확한 내용은 제가 감히 말씀드리기보다는 직접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저는 현재 한옥리모델링을 하는 작업자로서 제가 애자일에서 인상깊게 영향을 받았던 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애자일은 쉽게말해 신속한 반복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론이자 그런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개선하려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애자일 방식을 비교하는 재밌는 그림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만든다고 해봅시다. 자동차 완성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합한 구성원으로 조직된 팀을 만들어서 어떤 자동차를 만들지 논의한 뒤, 자동차의 각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라인을 만들고 관리하여 완성된 부품들을 잘 조립해서 완성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세계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 그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동차를 만들라고 했는데 난데없이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었습니다. 엔진도 없이 말이죠. 그 다음에는 자전거를, 그 다음에는 오토바이를 만들고나서야 겨우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각 과정별로 표정이 그려져있는데 위 그림과 비교했을 때 아래 그림의 표정이 전체적으로 한결 낫습니다. 위 그림의 표정이 나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최종 완성이 되기전까지 지금 만들고 있는 부품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아래그림에서는 스케이트보드가 비록 엔진도 없고 핸들도 없지만 나름 쓰임새가 있어 표정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이겠죠.


위 그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때 사용하는 방식이고 아래 그림은 애자일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요? 자동차를 만드는 목표에는 두가지 모두 똑같이 성공했는데 왜 굳이 이렇게 다른 방식을 고민해봐야 하는걸까요?




사용자의 탄생


위에서 PC게임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요. 결국 제품이란 고객의 선택을 받아야 시장이란 환경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생산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이건 꼭 필요한거야' 확신하며 겨우 제품을 개발해냈는데 (그것이 소프트웨어건 주방기구같은 하드웨어건 상관없습니다) 쿠팡에 올렸더니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소수의 고객에게 선택을 받았더라도 사용후기가 별로 좋지못하면 그대로 끝입니다. 이제까지 공들인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죠.


애자일은 사용자의 선택과 시장의 필요를 전제로 하는 개발방식입니다. 생산자가 99% 성공을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시장에서 고객에게 먹힐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생산자는 '내가 고객이라면 이 제품을 반드시 좋아할거야'라고 확신하더라도 그 결과는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결과를 예측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최종 완성품과 아주 가까운 수준으로 빨리 시장에서 냉철한 테스트를 받아봐야 그제서야 겨우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수요가 많고 공급이 부족했던 산업화 시대에는 만들기만 하면 정말 다 팔렸습니다. 인구는 많지, 물자는 부족하지 사람들은 점점 소비를 많이 했으니까요. 사용자 분석은 당연히 필요없었고 A는 바퀴를 만들고 B는 핸들을 만들어서 빨리빨리 조립해서 내놓기만 하면 어떻게든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젠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 예측불가한 시장의 선택을 최대한 가깝게 맞추기 위해서 생산자들과 개발자들, 또는 마케터들은 판매방식만 바꾸는게 아니라 생산방식마저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방식이 애자일입니다.


애자일은 주로 IT관련 소프트웨어 제작사에서 많이 외치는 단어입니다. 사장님들과 기획자, 디자이너들과 개발자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이제 꽤 유명해진 개발방법론인데 이게 사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립니다. 저는 제 성향과 잘 맞아서 무척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주 싫어합니다. 빛좋은 개살구라면서 말이죠. (제 경험상 개발자분들은 열에 여덟은 싫어했습니다)




애자일과 한옥 리모델링


그런데 이렇게 IT스러운 애자일 개발방식이 어떻게 한옥 리모델링에 적용되었을까요? 이런 공사가 처음인 제게 모든 재료와 모든 작업들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한마디로 끝이 어딘지 몰랐고 그 끝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필수 요소인 설비와 배관, 벽체공사와 화장실작업은 전문가를 모셔와 어떻게든 되겠지만 그것들은 조화롭게 하나의 끝으로 이끄는 것은 제가 오롯이 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혹시나 뒤죽박죽이면 어떡하지? 조화롭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문가가 하기엔 아까운 작업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제가 해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처마밑에 떨어진 흙벽을 메꾸고 마당에 벽돌을 재배치하고 외벽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들.. 그런 작고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서 집 전체의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되는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고,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싶어서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 방법을,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 저 방법을 말해주는데 어느 방법이 지금 이 상황에 적합한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직접 부딪히면서 해보는 수 밖에요.


애자일의 핵심은 빠른 론칭입니다. 가령 배달의민족 같은 앱을 만들고싶다고 한다면요. 음식 메뉴를 고르고 전화를 할 수 있게, 딱 이 두가지만 넣은 버전을 먼저 시장에 내놓는것입니다. 물론 배달앱이 상향평준화된 지금 이런 앱이 올라온다면 아무도 다운로드받지 않겠죠. 빠른 론칭은 빠른 학습으로 인도합니다. 작업하는 사람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개선한다는 이 태도가 고객이 정확히 원하는 포인트를 집어내는 마법을 부리게 하는 것이죠. 저도 학습해가면서 이 캄캄한 길을 헤쳐나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큰 물줄기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보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행여나 잘못갔을 때 크게 되돌아오는 것보다 안전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애자일은 작업자를 성장시킵니다. 빠른 론칭이 빠른 학습이 되고 학습이 누적되면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대신 작업장은 남들이 봤을 때 엉망진창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ㅎㅎ


몰탈위에 젯소, 퍼티위에 젯소와 페인트는 어떻게 다른지 작은 실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온돌바닥에서 나온 구들장을 마당에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실험해보는 중입니다.
벽돌조적은 그런대로 할만했지만 여기에 색을 입히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멘트벽돌에 그런거 하는거 아니라고 주변 어르신들께 잔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처마밑 작업은 여러가지 재료들을 짧고 반복적인 실험으로 파악해보면서 진행했습니다.
주방은 도배를 했지만 벽지위에 수성페인트를 칠했습니다. 벽지위에 페인트칠이 될지 의심스러웠는데 꽤 잘 발렸습니다.
마당 한 구석에 불멍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여러번 이곳에서 쓰레기 소각을 했었는데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위치라서 이곳으로 결정됐습니다.


제가 애자일을 처음 접했던 2011년 이후로도 가는 회사마다 애자일은 항상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애자일을 도입해 만족했던 결과가 냈던 적도 있었고 도중에 그만둔 적도 있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애자일은 항상 제게 뭔가를 부지런히 배울 것을 요구했고 이대로 멈추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옥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 가졌던 막연함과 두려움을 이 애자일이라는 무기로 맞서 싸웠습니다. 애자일은 완전하지도 않고 항상 이기기만 하는 무기는 아니지만, 가야할 길은 먼데 앞은 깜깜하고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한번쯤 사용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특별히 복잡한 레슨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애자일의 핵심 몇가지만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그런 태도를 견지하면 되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거나 고민을 거듭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중이라면, 부분적으로 애자일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시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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