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공사에 들어가기 며칠 전, 인테리어 작업반장님께서는 엑셀파이프를 깔아 바닥난방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엑셀파이프는 보일러실에서 나와서 주방, 욕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는데, 방 바닥높이보다 욕실 바닥높이가 낮기때문에 (물이 넘어오지 않게 보통 그렇게 하죠) 욕실 입구쪽에서 파이프가 직각으로 꺾여 올라와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꺾인 부분이 바닥에서 상당히 돌출되어 나와있었고 타일작업을 위해서 작업반장님은 시멘트벽돌로 단을 만들어 가리는 방법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니 제가 해보라고 말이죠. 저는 그 전까지 벽에 퍼티를 바르거나 페인트를 칠하고, 나무를 샌딩하는 작업만 해왔었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확 높아져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벽돌을 쌓아 입체적인 뭔가를 만드는 일은 '진짜작업'이니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조적작업이라고 무진장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색종이를 풀로 붙이 벽돌에 몰탈을 발라 붙여서 쌓아 올리는 것이죠. 끈적거렸던 풀이 딱딱하게 굳어 색종이가 달라붙는 것처럼 몰탈이 굳어 벽돌들을 단단하게 이어주어 그것들이 계단이 되고 벽이 되고 집이 되는 것입니다.
에이 뭐 별거 없어요. 이렇게 쌓아올리면 돼요. 자 이렇게.. 참 쉽죠?
으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가 벽돌들을 반듯하게 쌓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나중에 어짜피 타일에 가려질 녀석이라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예상외로 저의 첫 조적작업은 그런대로 봐줄만했고 타일작업 사장님이 타일로 마무리 작업을 잘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감나무방과 내부욕실을 잇는 계단으로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적작업의 첫경험을 치르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두번째 작업을 벌이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제 신경을 긁었던 툇마루 아래부분을 가리는 일이었습니다. 목수 두 분께서 툇마루 작업을 잘 끝내주셨지만 집 정면에서 봤을 때 툇마루를 받치는 구조물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잘 가린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고 그때부터 무엇을 사용해서 가릴것인지 고민을 되었습니다.
처음엔 일반적인 방부목을 생각했습니다. 울타리를 치듯 툇마루 아래부분을 가리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주변 어르신들이 툇마루 아래는 반드시 공기가 통해야 나무가 썩지안는다고 하셔서 나무 사이사이에 간격을 주면 어떨까하고 언젠가 그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부목을 자르려면 기계톱도 있어야하고 얼만큼 사야할지 막막하고 어떤 방법으로 고정시킬지 여러가지 것들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물론 전문가에게 부탁하면 어렵지않게 하루만에 만들 수 있겠지만, 왠만하면 제가 혼자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비용을 아끼려는 이유도 있었고요.
마당 한 쪽엔 벽체를 쌓다가 남은 시멘트벽돌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욕실 작업으로 자신감도 붙었겠다 조적을 해버려..? 그러기엔 색이 문제였습니다. 시멘트벽돌에 칠이 먹을까요?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벽돌을 날라다가 일단 몰탈없이 쌓아보았습니다. 어라, 꽤 괜찮네요? 그리고 벽돌로 했을 때 또다른 장점이 있었습니다.
봉당(한옥양식에서 땅과 건물의 경계인 시멘트 영역)에서 툇마루에 올라가려면 단차가 꽤 커서 무릎이 좋지않은 노인과 키가 작은 어린이에게는 조금 힘들 것 같았습니다. 이 곳은 출입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는 곳이니까요. 이 높이차이를 완화해주면서도 정면에서 봤을 때 툇마루 아래를 가릴 수 있다면? 그런 계획을 세우고 아래부분엔 단을 만들면서 끝부분엔 높이 쌓아 올려보았습니다.
꽤 맘에 들었습니다. 두 가지 목적을 한꺼번에 이뤄냈으니까요. 툇마루 아래에 바람이 조금 통할 수 있게 구멍을 내어 쌓아보았습니다. 벽돌로 공간이 다 막힌 것보다 이렇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뚫려있는 편이 시각적인 재미가 더해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제는 칼라를 입힐 일만 남았습니다. 목표는 툇마루와 비슷한 진한 갈색이 되는 것입니다. 일단 아크릴물감을 생각했습니다. 어디선가 아크릴물감은 어디든 바를 수 있다고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애자일하게 (지난글) 한번 칠해보았는데, 시멘트가 물감 대부분을 흡수해버려서 흐리멍텅한 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흡수되는 것이 문제라면 한번 막을 입혀주고 칠하면 덜 흡수되지 않을까? 그래서 젯소를 한번 발라보았습니다. 젯소는 흰색이라 그 위에 칠을 하면 훨씬 발색이 좋아지지 않을까하고요. 그런데 이 시멘트벽돌은 젯소마저 먹어버리지 않겠어요? 옅게 여러번 칠해도 도무지 하얘지지 않았는데 이번엔 물 없이 뻑뻑하게 칠하니 그제서야 먹을만큼 먹었는지 흰색으로 되었고, 그 위에 갈색 아크릴물감을 칠하니 제가 원하는 색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갈색 벽돌로 쌓으면 되지않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ㅎㅎ 그리고 시멘트벽돌은 외부미장이 필요한 단순조적용이라 강도가 약한데 비해서 구운 벽돌은 정말 단단합니다. 외부 충격에 제가 만든 이 작품은 자비없이 깨질것입니다... 그런데 전 남은 시멘트벽돌을 처리하고 싶었고, 갈색도 수십가지라 제가 딱 원하는 칼라를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방문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왠지 불멍을 정말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쓰레기를 소각했던 자리에 유튜브에서 얼핏봤던 디자인으로 벽돌을 쌓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시멘트벽돌은 남아있었고 이제 어느덧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시멘트벽돌만 보면 쌓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불멍도 불멍이지만 박스를 태울 수 있게 넉넉한 사이즈의 크기로 원을 만들어 낮게 쌓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젯소를 발라 조금 더 완성도있게 보이게 했습니다.
12월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조경작업은 뭔가 아쉬웠습니다. 마당 바깥에는 바로 논이 붙어있었는데 이 경계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완성도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이 곳에 방부목으로 울타리를 낮게 치려고 했으나 이번에도 고심끝에 방부목 작업은 외면받고 시멘트벽돌 조적작업이 또(!) 등장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리모델링 초반에 집의 철거와 설비를 다해주셨던 뒷집 사장님이 지나가다가 실로 수평을 만들어 나란히 쌓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툇마루 아래를 작업할때는 그리 길지 않는 길이라 그냥 감으로 했는데 이 곳은 길이가 꽤 길어서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했고, 배운대로 실을 길게 연결해서 그 라인대로 벽돌들을 맞춰 붙였습니다. 역시 하고나니 대만족.. 정말 중요한 순간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