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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Sep 05. 2022

존댓말의 과잉


저는 7년전쯤에도 존댓말 사용의 과잉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맘껏 드러내면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존댓말의 방해) 


요약하자면 지나친 존댓말은 현대 사회에 걸림돌이 되는것이 아닌가, 정말 필요한 존댓말만 두고 모두 없애고 모두 공통의 언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인사할 때,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면 인사하는 양쪽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상하로 구분되는 이 양쪽관계는 아랫사람은 긴 언어를 사용하지만 (안녕하세요, 안녕히주무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가세요) 윗사람은 아주 짧은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대부분은 아예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응, 어, 그래, 안녕, 끄덕) 제가 해외여행할 때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그것이 저는 부러웠습니다. 


이런 문화를 단번에 수정하는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죠. 그래서 저도 문제만 제기할 뿐 이렇다할 해결책이나 좋은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일상속의 작은 습관과 행동들이 모여서 인생을 대하는 큰 관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옛날부터 존댓말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좋게 시작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제게는 다소 어색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다소 난감한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거냐' 이는 '너 버릇이 없구나'로 이어질 수 있고 방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최고난이도 비난인 '싸가지없는 녀석이구만!'이라는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어서 아무도 그런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저도 이렇게 블로그에서나 하지 일상생활에서는...)


인사를 비슷한 언어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존댓말까지 없애자는 것은 과한 것 아닌가? 그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상황에서까지 존댓말을 남용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면 저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오천원이세요', '화장실은 왼쪽이세요' 이러한 언어가 언젠가는 표준어로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무 문제없게 느껴진다면 저도 상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존댓말의 과잉은 자연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상대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두려워하거나 험한일을 피하기위해서 나온 결과이기때문에 슬프고 그 말을 듣는순간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위 이미지에 등장하는 인터뷰는 제게 그런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합니다. ('사람의 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말의 성격'을 곱씹어보자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튄 '나쁜놈들'에게 굳이 저렇게 존댓말을 해야하는지 저는 매우 어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막에서는 누락됐지만 '총 3만 5천원이신데'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드'셨'어요
3만 5천원이'신'데
퇴장하'시'면서
계산을 안하'시'고
가'신'거죠.


제가 이렇게 디테일하게 지적을 하는 이유는 저도 늘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운영하다보니 예약손님들과 거의 매일 여러차례 메시지를 주고 받습니다. 제 숙소를 찾아주신 분들이므로 당연히존댓말로 소통하는데 문장의 동사, 형용사, 서술격 조사에 존대의 뜻인 '~시~'를 모든곳에 넣으니까 이상했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써야하는 것인지, 이렇게 쓰지 않으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것인지, 오히려 이렇게 쓰니까 문장이 더 어색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메시지는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문자화 된 메시지가 반복해서 사용될 때는 이 문장구성이 과연 최선인지 계속 점검합니다. 혹시 메세지가 중복됐는지, 어순이 바뀌는것이 나을지, 무엇을 더하거나 빼야 매끄러운 문장이 되는지 계속 신경이 쓰여서 수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런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처음에 썼던 문장보다 더 나은 문장이 되고 상대방(수신자)에게 전달이 더 잘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모습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해야 합니다. 내용과 상관없는 장치들이 문장 여기저기에 있다면 그것은 메세지 전달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방해요소일 뿐이고 위 사례의 인터뷰에서는 반복되는 '시'가 그렇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형태로 수신자에게 메세지가 성공적으로 전달되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탕수육과 짜장면 두개를 시켰는데 3만 5천원이 나왔어요. 20분 후에 나가면서 계산도 안하고 그냥 간거죠. (참 나 어이가 없네요.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죠?)


인터뷰를 한번 고쳐봤습니다. 제가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허탈하고 어이없는 기분을 담아봤습니다. 이상한가요? 무례한가요? 주인도 사람인데 저런 일을 겪고도 짜증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사석에서는 지인과 정말 쌍욕을 해도 될 일이죠. 오죽하면 뉴스에 나왔을까요. 좀 더 험악한 말을 했어도 용서받았을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존댓말에 있어서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고 본질은 선하지만 가끔은 경직된 사회분위기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단 숙이고마는 것은 아닌가요. '오천원'이나 '화장실'마저 존대해버리는 과잉된 태도도, 상대방을 얕보는 무례한 태도도 어쨌든 나와 상대방을 같은 선상에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고 높이가 저마다 다른 수직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죠. 너와 내가 같은 말을 사용해서 인사를 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너와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이지만 인사를 하는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수평적 세계에서 우리는 동등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 인터뷰가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왠지 처량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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