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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Dec 08. 2015

권위주의의 종점

한국의 노인자살률이 압도적인 1위라는 뉴스를 봤다. 노인빈곤률 역시 마찬가지. 그래서 보통 인과관계를 그렇게 엮기 쉬운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그것은 아버지세대들의 권위주의다. 한 대 맞을 각오로 말한다면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자초한것이나 다름없다. 


권위주의는 대화를 단절시키고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지금 한국이 겪고있는 극심한 세대갈등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 어떤시대에나 어떤장소에나 세대차이는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 격차가 너무 심할정도라는 것? 서로 증오할 정도의 세대차이는 더이상 정상적인 차이의 범주를 벗어났다. 단순히 생각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게 된 것. 그래서 어떤 젊은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빨리 몇십년이 흘러서 세대가 완전히 교체되면, (지금의 노인들이 사망하는 날을 말하는듯) 그때는 좀 괜찮아질것이라고 한다. 과연그럴까? 


권위주의는 젊은사람들의 아버지세대, 지금의 노인들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다. 젊은사람들도 말이나 행동에서 몇살 어린 사람들을 나이나 사회적 지위로 밀어부치거나 입막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잘못된 예절문화에서 탄생하고 군대문화가 양념을 친 결과인데 아버지세대로부터 가정에서 알게모르게 배운 영향도 있을것이다. 즉 살아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권위주의의 다양한 형태들은 미묘하게 다음세대로 전달되고 확산된다. 여자들은 남자들만큼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이 권위주의라는게 처음에는 (주로 어리거나 신입일때) 고통스럽게 입문하게 되는데 조금만 참고 견뎌내면 의외로 재미있고 달콤하다!! 나는 이걸 대학교와 군대있을 때 느껴봤는데, 군대가기전 대학교 1,2학년때는 어느 술자리를 가나 선배들과 동행을 할때 참으로 기죽거나 눈치보기 마련이다. 군대 이등병,일병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금만 참고 1년이 흐르면 나는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데 짬밥이 밥먹여준다고, 생각지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 내 앞에서 쩔쩔매는 어리버리한 신입이 들어오면 혼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자주 그리고 못되게 혼낼수록 그 선임의 인지도와 지위는 상승한다. 제대후 대학교에 들어와도 마찬가지. 나는 변한게 하나도 없는데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내앞에서 쩔쩔매고, 오빠, 선배님 하면서 극진한 대우를 해준다. 이사람들은 군대가기전에 내가 선배들 앞에서 바보짓했던 사실을 알지못한다. 원래부터 카리스마있고 멋있는 사람인줄 아는것. 얼마나 편하고 달콤한가. 나는 그저 있는 폼을 한껏 잡으며 아랫것들을 지적하고 조언해주면 되는것이다. 이게 바로 권위주의다. 이런 젊은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나도그랬었고) 노인들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뀐다? 몇십년이 흐르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지금 노인만큼 적어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젊은사람들을 싸잡아 욕하고, 그렇게 돌고 돌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잠시 흥분) 이렇듯 권위주의는 무섭기때문에 이제는 정신차리고 의식해야하고 없애는 노력을 해야한다. 처음에 노인자살률 얘기를 했는데, 권위주의의 종점이 불행한 고독이기 때문. 왜 많은 노인들이 자살을 하는가? 쓸쓸하기 때문이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고 내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다. 빈곤율? 그것은 관계보다 부차적이다. 극심한 빈곤도 관계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는 좋은 관계에서 만들어지는것 아닌가. 능력이 많으면 일자리를 구하기 쉽겠지만 노인이 능력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나, 노인일자리는 그다지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느 노인이 어떤 일을 맡아줄 수 있는지 파악될 수 있어야하는데, 젊은이들(고용할 수 있는)과 노인들(고용될 수 있는)이 어느정도의 교류가 존재하는 커뮤니티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교류가 존재하는가. 젊은이들도 노인들을 보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그 전에 노인들의 잘못이 더 크다. 그게 바로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행해왔던 권위주의의 결과다. 한창때는 아주 달콤하고 위엄있는 시간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보니 주변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것. 긴 시간동안 꾸준하게 천천히 주변 사람들, 특히 아내나 자식들, 사회와의 연결끈을 끊고 있었던 것이다. 


권위주의는 진행중의 상태일때는 각자의 역할이 너무나 명확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이어리거나 경험이 적은사람은 엎드리고, 나이많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 위에서 큰소리치면 된다. 굉장히 간단한 게임이다. 그렇기때문에 더욱더 지금의 노인들을 보고 우리의 멀지만 가까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의 종점은 쓸쓸한 고독이다. 


ps. 포르투갈에서 젊은사람들과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노인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내가 그들을 단 며칠만에 전부를 알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표정을 보면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한국 노인들보다는 대체로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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