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Dec 07. 2015

존댓말의 방해

일본에도 존댓말 비슷한것이 있다고 알고있는데, (예를들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에서 뒷부분이 '습니다'로 해석?) 중국에도 그런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알고보면 영어에도 공손한 표현은 존재한다. Can you give me water?는 이를테면 싸가x없는 표현인거고. Could you please give me water?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존댓말이 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존댓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진정한 존댓말! 그런데 난 그것이, 예절바른 그것이 요즘의 삶을 잘 살아가는데 적잖이 방해요소로 보인다. 그 요소들이란.


1. 처음보는 사람을 경계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여행중이라서 더욱 그런 상황이긴 하지만, 예전 촌락을 이루고 소규모로 살던 농경사회에서는 어느집에 숟가락이 몇개있는지조차 알 정도로 가깝고 두터운 이웃관계를 형성했던지라 낯선사람을 만날 기회가 잘 없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렇지 예의범절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젊은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시로 상경했고 시골에는 노인들밖에 안남게 되었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그들은 서로에게 모두 낯선존재가 되었다. 아, 이 사람은 나보다 형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함부러 인사조차 하지 못한다. 존댓말이 없는 사회에서는 숙소에서 마주치거나 축구하다 마주쳐도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인사를 한다. Hi. 80살 할아버지건 12살 꼬멩이건 망설임이 없는게 부럽다. 하지만 난 한국에서 낯선사람과 인사해야할 경우엔 망설여진다. 물론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상대가 어른일 경우 인사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존댓말을 섞어서 인사를 하면 윗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는게 한국예절의 특징이기 때문. 돌아오지 않는 인사는 공평하지 않아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2. 일을 할 때나 의견을 낼 때 주저하게 만든다.

한국사회가 질문이 없고 토론을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그게 주입식 교육의 문제인건가? 생각이 들었지만 존댓말의 책임도 큰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댓말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을 서열로 나누는 수직적 사고방식의 책임이겠지만. 회사에서 업무회의를 하거나 일터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 이 존댓말(수직적 서열관계)은 아랫사람의 입을 스스로 닫게 만듬으로써 조직원의 절반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능률을 떨어뜨린다. 물론 당연히 거침없고 자기 주장을 확실하게 하면서 예의까지 바른 젊은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조차도 포함해서 모든 젊은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마법같은 말이 있다. '싸가지 없이..' 비교적 망설임이 없는 편이고 꽤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도 나보다 경력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올까봐 은근히 긴장하는 편이다. 도대체 싸가지라는게 뭐길래! 그래서 나이 어린 사람들은 '싸가지없는 젊은친구'가 되느니 차라리 조금 과묵한 예스맨이 되는편을 택한다. 나 하나쯤 예스맨이 된다고 이 회사가 당장 망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오늘부터 조금 당돌한 젊은친구가 되는쪽을 선택한다면 지금부터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테니까.


3. 외국인들과 한국에서 조기축구했을 때 있었던 일

실력이 그저그런 조기축구회에 몸담았을 적 일이다. 어느날 외국인들과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그다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어색어색한 사이었고, 그 외국인팀도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다. 축구시합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합중에 하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여기!', '슛!' 이정도? 그런데 조언을 매우 좋아하는 어른 몇명이 들어오면 그분들이 하는 말의 양은 상당히 많다. 주로 어린사람들에게 축구전반에 걸친 충고를 쭉 늘어놓는데 긴박한 상황에서는 조금 험한말까지 섞어가며 지도해준다. 어쨌든 우리는 그러한 어른이 없었기에 그 날도 '엇!', '여기요!', '나이스!'정도를 외치고있는데 상대팀은 참 이야기를 많이한다. 누가 누구를 혼내는것도 아닌 그냥 대화. 잘했으면 잘했다고, 아쉬운점이 있으면 그대로. 그러다보니 외국인팀은 점점 호흡이 잘 맞아 떨어져갔고 점점 경기를 압도하게 되었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괜찮은 플레이를 했다면 '오! 잘했어요!' ... 좀 건방진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나이스를 외친다) 판단미스로 좀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다면 '방금은 이렇게 저렇게 하는게 더 나았을 것 같아요!' 이건 모험이나 다름없다. 상대방이 속이 넓은 사람이라면 '아 그렇지! 그럴땐 너도 이렇게 했으면 상황이 더 좋았을텐데'하고 맞받아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당히 위험하고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당장 해꼬지는 하지 않겠지만 언젠가 터트릴지도 모른다. '너 좀 버릇없다고' 어쨋든 난 말이 많은 외국인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부러웠었다.


4. 노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나는 오히려 노인들이 편하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적의가 없다. (소매치기가 없다는 말) 한국에 있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들은 조금 퉁명스러워서 어렵지만 할머니들은 대부분 참 착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과 말섞는걸 어려워하고 재미없어한다. 통하는게 없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관심사가 다른것도 있겠지만 나는 사용하는 말이 서로 다르기때문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봤다. 어느날 내가살고있는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3살짜리 꼬마가 아빠와 함께 내리더니 나를보고는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그 꼬마에게는 내가 아주 늙은 어른처럼 보였을것이다. 3살짜리 꼬마나, 젊은사람들이나, 80대 노인이나 똑같은 인사말을 쓴다는건 뭔가 상당히 공평한 느낌이다. 내가 사용하는 말을 저 사람도 쓴다는 그 느낌. 이성끼리 호감을 느낄때 나타나는 증상이 서로의 행동을 무심결에 따라한다는 말도 있지않은가. 나도 여기 포르투갈 집주인 아저씨에게 호감(동성애 아님)을 느꼈을 때 자연스럽게 아저씨 행동을 따라하는 나를 발견했었다. 동질감이나 소속감 뭐 그런게 아닐까. 쓰는 말이 완전히 다르다는건 그만큼 너와 내가 다른사람이라는걸 암묵적으로 강요받는 느낌이랄까. 


존댓말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라는 말은 아니다.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상황에서는 존댓말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말 그대로 존대하는거니까. 하지만 낯선사람과 처음에 인사하거나, 인간관계보다는 일에 집중을 하고 있을때 회의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러니까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이 최우선이 아닌 경우. 아직 상대방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일이나 축구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존댓말은 너무도 걸리적거리는 존재다. 더구나 존댓말을 해야하는 사람과 받아야되는 사람이 나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정답이 정해져있다면, 나이를 모르는 얼굴만 아는 관계(weak tie relationship)라면 더욱 난처하다. 차라리 이렇게 되면 어떨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위에서 언급한 난처한 상황에서는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서로 잘 알게 되고 친해졌을 때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는 조건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 그러고보니까 현재의 상황과는 정 반대다. 지금은 잘 몰랐을경우에 서로 존댓말을 하다가 조금 친해지면 서로 반말을 섞어가면서 그들의 친함을 드러내니까말이다. 어쨌든 재밌는 생각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스본에서 길을 잃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