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무렵, 직방 재직 중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직방'은 메인컬러가 노란색인데 노란색은 다른 컬러와 비교했을 때 다루는 방법이 매우 다르고 까다롭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빛깔이 있지 않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용도마다 쓰임이 다르기때문에 딱히 없다는게 나의 대답이었다. 특정 색이 다루기 어렵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내 앞에 노란색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직방' 브랜드 메인컬러를 노란색이 아닌 다른색으로 바꿔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 노란색은 왜 까다로울까? 일단 노란색은 밝다. 당연한 말이지만 빛의 스펙트럼으로 뽑아져 나오는 수만가지 색상중에서 가장 밝은 색이 노란색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캐릭터그림이나 문자처럼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메세지를 생략적, 은유적으로 전달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시성이 좋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로고의 조건은 이렇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있는 옥외광고판을 봤을때나, 눈이 좋지않아 흐릿한 시야에서도 어떤 브랜드인지 전달이 되어야하고 여러 패턴들이 뒤섞여있는 아마존 밀림이나 우주 어느 행성의 표면에서도 특정 브랜드 로고의 형태가 숨어져있어도 노이즈와 분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형태가 독창적이고 쉬어야 하며 인상적이어야 한다.
노란색은 이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방해요인이 된다. 과거에 브랜드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할 때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개념이다. 이제까지 디자인을 하면서 노란색이라고 색 사용을 기피한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다. 인터넷에서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노란색은 특유의 밝은 톤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흰 바탕에서 명암의 차이를 낼 수 없었다. 멋진 심볼과 로고타입을 만들어도 노란색이나 밝은 오렌지색으로 채우고 흰 바탕에서 보면 상품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바탕으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물론 Plan B로 반전된 버전도 있어야하지만 일단 Plan A는 기본 흰 바탕이다. 어떤 브랜드는 항상 어두운 바탕색이 따라다닌다고 한다면 그 브랜드는 메인컬러가 따로있는것이 아니라 어두운색 그 바탕색이 곧 메인컬러다. 메인컬러라는 것은 다른 요소보다 우선한다는 뜻이므로. 아래 그림처럼 괜찮은 타협점이 있다면 진한 테두리를 만들어서 노란색을 가두는 것이다. 흰 바탕과 밝은 노란색 사이에 짙고 선명한 경계선을 만들어줌으로써 BI의 가시성을 살리는 방법이다.
석유회사인 Shell 심볼은 메인컬러가 레몬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인데 가시성을 위해 두꺼운 빨간색 선으로 둘러쌌다. 물론 이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노란색 그대로 노출한 경우도 찾아보면 은근히 있다. 그런 대표적인 심볼이 맥도날드.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노란색(정확히 말하면 주황색과 노란색의 중간)으로 '직방'의 BI를 완성할 수 있었지만 메인컬러와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여타의 많은 디자인을 해야하는 나에게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직방'이 점점 알려지면서 여러 플랫폼에 수많은 광고와 홍보성 컨텐츠가 필요했는데 노란색을 메인으로 사용하면서도 어느 환경에서나 눈에 잘 띄게 해야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나는 노란색 혹은 오렌지 계열의 색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다른 서비스/브랜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이미 내가 하고있던 고민들을 미리 했을테니까.
그래서 찾아봤던 브랜드가 음악듣는 '벅스', 원조SNS '싸이월드', 동영상플레이어 '곰 플레이어', 소셜커머스 '티몬', 영화추천 '왓챠'다. 이 중에서 '직방'처럼 앱/웹 가릴 것 없이 활발하게 마케팅을 펼치는 곳이 '왓챠'다. '왓챠'는 개인적으로 기획, 아이디어, 센스, 개발능력, 디자인, 메세지 모든게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제품을 잘 만드는 곳이 잘 되어야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 직방 디자인작업에 애를 먹거나 밝은 메인컬러를 가지고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때면 왓챠를 보며 안심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할 기회를 갖는 등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근래 1,2년 사이에 오렌지(노란색같으면서도 오렌지같은) 컬러 기반의 많은 브랜드들이 레드컬러에 가깝게 메인컬러를 바꾸었다. '왓챠'야 컬러뿐만 아니라 아이덴티티 전체를 바꾸는 전면리뉴얼을 한 케이스라서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겠는데, 이상한점은 리뉴얼이라는 낌새도 없이 교묘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컬러가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티몬', '벅스', '싸이월드', '곰플레이어'는 거의 비슷한 오렌지계열의 컬러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라데이션으로 Design Variation을 주더니 마치 영화의 두 장면이 자연스럽게 디졸브 되듯이 마침내 레드계열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변화는 비슷한 난색계열안에서의 이뤄진 눈에 확 띄지 않는 변화이기 때문에 감지해내기가 쉽지않고 그냥 어렴풋한 느낌이 들 뿐이다. 나도 혹시나 해서 구글링을 하여 예전 이미지를 보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지, 사람의 감각이란 금새 적응을 하게되어 원래 그랬던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거창하게 전면리뉴얼을 하지 않아도 은근~~히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랬다. 대기업은 쉽지 않겠지만 판이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는 좀 더 나은 방향이 있다면 소란스럽지 않게 교체해 나가기가 쉽다. 그런데 위 그림과 같은 변화는 우연치고 너무나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비슷한 컬러에서 출발했고 비슷한 컬러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오렌지계열의 색을 포기한 원인이 뭘까?
예전 자료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데 '벅스'는 그림에서 보이는 컬러보다 더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오렌지색이 메인컬러였다. '싸이월드'도 마찬가지로 더 밝고 산뜻한 색이었는데 이 셋의 공통점은 그라데이션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보통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갈 때, 메인컬러 (key color)는 한 가지 색을 지정한다. 16진수로 이루어진 hex code 혹은 Pantone 컬러로 정확히 한 색을 지정한다. 어떤 디자이너가 들어와도 디지털 코드르 이루어진 그 색을 사용하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밝은 컬러로 지정된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약속된 메인컬러가 약빨이 잘 안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예를들어 위 그림에서 두 번째 '싸이월드' 그림과 같은 경우, 바탕을 하늘로 정했는데 흰 바탕일때보다 밝은 오렌지는 확실히 묻힐 수 밖에 없게된다. 이럴 때 이미 정해진 약속을 깨지 않으면서 하늘배경에서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으려면 약속된 컬러를 사용하긴 하되 조금만 사용하고 조금 더 톤이 진한 색을 사용해서 효과를 보는것이다. 약속을 아슬아슬하게 깨지 않으면서 현재 디자인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정확하게 하자면, 그라데이션의 색 범위를 지정하는것이 맞지만 그렇게까지 타이트하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곰 플레이어'의 아이콘 곰 발바닥 하단에 검은색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게 보인다. 이는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의도된것이라기 보다는 흰 바탕과 오렌지색을 구분시켜서 형태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에 가깝다. 다시말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할수도 있게된다. 그런데 최근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미국발 디자인이 있다. 플랫디자인 (Flat : 평평한, 납작한)이 그것인데, 애플이 최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있는 모든 디자인을 평평한 스타일로 바꾸면서 다른 업체나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비슷하게 따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입체감이 느껴지게 하는 쪽이었다면 애플의 발표이후 디자인을 아는 사람은 아는만큼, 모르는 사람은 그런대로 이제는 평평하게 디자인을 하는것이 멋진것이 되버린 요즘이다. 그래서 '곰플레이어'의 짙은 다크써클은 없애버리고 싶은 눈총을 받았을것이고 그림자없이 나이스하게 잘 보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메인컬러를 버린것이 아닌가 한다.
'티몬'의 경우는 몬스터 캐릭터를 버린것, 그리고 전에 얘기했던 디자인 유행이 얽혔다고 본다. 몬스터 캐릭터는 전략적으로 버렸겠지만 '직방'과 같이 두꺼운 어두운 테두리를 사용했다는 점이 평평한 디자인을 하고싶었던 욕망과 부딪히지 않았을까. '왓챠'의 경우는 그라데이션을 꽤 많이 사용해와서 밝은 오렌지색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전면적 리뉴얼을 했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느낌을 주고싶었기 때문에 교체했다고 보는게 더 맞다. 아무래도 고생해서 다 바꿨는데 잘 못알아봐주면 섭섭할테니까.
'왓챠'처럼 전면적 리뉴얼을 하지 않는 나머지 브랜드들은 너무 큰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좀 더 잘 보이고 최신 유행에 따르기 위해서 선택한 긍정적인 출발이었지만 그 변화의 폭이 너무 클 경우엔 브랜드 정체성마저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오렌지계열에서 레드계열의 변화정도라면 기존의 난색의 핫하고 따뜻한 느낌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빨간 유행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