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밑이 어둡다
지인이 선물해준 총각김치과 함께 라면을 먹고 다음날 그 총각김치를 줬던 지인과의 대화.
총각김치 정말 맛있어요.
그치? 라면에 먹으면 진짜 맛있어.
어? 맞아요. 어제 바로 그렇게 먹었어요. 전 김치중에서 총각김치가 제일 좋아요.
그 대화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라면과 총각김치의 조합은 정말 상상이상입니다. 총각무의 딱딱하고 시원한 식감은 뜨끈하고 질척한 라면의 식감과 적절하게 상호보완적입니다. 라면에 김치를 보태서 먹는게 아니라 주인공이 총각김치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5:5의 비율로 골고루 먹습니다. 배추김치는 조연의 인상이 강하지만 총각김치는 적어도 제게 주연급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분명히 환상적인 조합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수없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제가 먹었던것처럼 물론 '내 집'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이러한 조합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 모두가 다 인정할만한 훌륭한 조합이지만 "오늘 점심은 라면에 총각김치 어때? 잘하는 집을 알고있어" 라고 약속할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 라면의 종류는 예측할 수 있지만 김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상 배추김치가 85%, 깍두기가 15% 나올 확률이 있습니다)
이건 김치가 주연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반찬 중 한가지에 머무를수밖에 없는 운명이냐, 그렇지않고 충분히 맛있어서 김치때문에 손님이 찾아올 정도면 주연이 될수도 있는것 아니냐. 저는 당연히 후자쪽입니다. 배추김치는 약간 힘들고 총각김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총각김치가 맛있는 식당이 있다면 저는 그것때문에 갈수있습니다. 생각만해도 침이 고이면 그걸로 승부는 끝났습니다. 당연하게도 상황이 이렇게되면 김치는 무한리필되는 기본반찬 레벨을 벗어나 당당히 접시당 가격을 매기는 메인디쉬 레벨로 격상하게됩니다.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라면+총각김치 이 메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면에는 해물, 만두, 떡, 치즈 등 여러가지 재료들을 넣고 특별해지기 위해 공을 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주도에서 해물라면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습니다. 떡라면은 탄수화물이 겹치고 식감도 겹쳐서 절대 먹지않고 그나마 만두라면은 봐줄만 합니다. 하지만 총각김치는 라면과 식감과 영양적인 면에서 최고의 궁합을 자랑합니다. 이 조합은 우리가 이제까지 어두워서 보지못했던 등잔밑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