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럽축구] 유로파리그 스포르팅 : 잊지못할 귀가길

by 김정완


포르투에서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를 보고, 리스본에서 첫 유로파리그를 보게되었다. 챔피언스리그보다는 한단계 아래있는 리그라서 국내팬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대회이지만, 역시나 이곳 유럽에서 체감하는 정도는 챔피언스리그나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자기네팀이 참가하는 대회는 큰대회건 작은대회건 모두 소중히 여기는게 부럽고 놀라울따름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주변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경기장에 일찍 도착했다. 홈팀은 리스본의 인기팀중의 하나인 스포르팅(다른팀은 벤피카)이고 상대팀은 터키에서 날라온 베식타스다. 포르투에서 원정팀의 행진을 봤던지라 이번에도 터키팬들의 행진이 있지나 않을까 예상하고왔는데 조금 조용한편이다. 매표소에서 가장 가격이 싼 자리를 달라고 했다. 축구장에선 돈을 많이 아끼는편은 아닌데, 이번게임은 양팀을 잘 알지 못하는편이라 돈이나 아껴야겠다는 심정이었다. 매표소직원이 구석2층자리를 주었고 나는 오케이했다. 이게 잊지못할 귀가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경기장에 입장을 하는데 약간 시간이 지연되었다. 터키에서 날라온 원정팬들 때문이었다. 입구가 총 4군데였는데 하필이면 같은 입구에 걸렸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입장해서 들어가보니 입구만 같은게 아니었다. 내 자리는 정확히 터키 원정팬들 한가운데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보통 열정적인 성향을 가진 팬들이 멀리원정까지 가는 수고를 하기때문에 뜨거운 열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스포르팅 홈팀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다. 굳이 홈팀을 응원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그 자리에 있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원정팀인 베식타스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고 경기가 진행되고 나는 자연스럽게 베식타스를 응원했다. 터키사람들은 상당히 호전적인데다가 외모는 다소 무섭게 생겼는데, 굳이 내가 그 자리에서 스포르팅을 응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전반전에 베식타스의 골이 터졌고 원정팬들은 엄청나게 열광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후반전이 되고 스포르팅의 반격으로 세골을 먹고 경기는 3:1로 끝났다. 터키사람들 냄비근성이 상당하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하더니 두골정도 먹고나니 아무도 응원하지않고 다들 시무록하게 남은 시간을 보낸다.


아무튼 그렇게 경기는 끝나고 밤 10시가 되어 집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경찰이 원정팬이 나가는 출구로 아무도 못나가게 막는것이다. 나는 딱봐도 이사람들 소속이 아니라는게 뻔히 보이는데도도 말이다. 말도 통하지않고 나 말고도 아무도 나가지않는 분위기라 나도 기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경기장엔 원정팬들 말고 아무도 남지않고 모두 나갔고 나는 서서히 답답해지고 배도 슬슬 고파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경찰들이 길을 열어주고 나는 드디어 나간다는 생각에 신이났는데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는데까지 경찰들이 쭉 서서 지켜보는 것 아닌가. 그런데 경기장 바깥에서도 쭉 서있다. 어? 나는 노란색 라인이 있는 저기 전철역으로 가야하는데 이쪽방향은 녹색라인 전철역 방향아닌가. 그런데 이 무리에서 나갈수가 없다. 경찰들이 무서운 얼굴로 쭉 막아서서 한쪽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뭐야이게. 빠져나갈데 없나. 함부러 도망치려고 했다가 곤봉으로 맞기 딱 좋은 험악한 분위기다. 그래.. 녹색선 타면 될거아냐. 전철에 도착하니 11시다. 경기끝나고 한시간이나 걸려 전철역까지 온 것이다. 그래 탄다. 표를 내지도 않고 경찰들이 원정팬 무더기들을 전철에 막 태운다. 전철안은 터키원정팬들로 만원이 되었고 서울출근길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콩나물시루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노선표를 보니 다음역이 노란색 라인으로 환승하는 역이 아닌가! 아 드디어 여기서 탈출하는거다. 열차가 10분정도 있다가 출발했고 다음역에서 내릴준비를 하고있는데. 이게 무슨일이야. 정차하지않고 지나친다. 다음역도. 또 다음역도 그냥 달린다.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경찰벽에 둘러싸여서 말도하지못하고 이대로 터키행 비행기까지 타야되는건 아닐까. 포기했다. 될대로 돼라. 전철은 시내중심가의 역에 드디어 멈춰섰다. 내리고보니 경찰들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해방인것이다. 시간은 자정이 되었다. 포르투갈에 지내면서 자정까지 집에 안들어가보기는 처음이다. 배가고파서 근처 까페에서 에그타르트와 크로와상과 커피를 먹고 아주멀리 걸어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정말 잊지못할 귀가길이었다.


IMG_6269.JPG
IMG_6271.JPG
유로파리그 오프닝 송


매거진의 이전글[유럽축구] 보아비스타FC, 포르투, 포르투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