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Aug 29. 2015

잘했다. 대신 고맙다.

한창 각종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언급되는 '알프레드 아들러'에 관심이 생겼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 책을 읽다가 푹 빠져버려서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까먹은채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치열하게 혼자서 고민했던 부분들이 상당히 들어있었고, 대화체로 쓰여있어서 멘토와 술자리를 같이한듯한 기분때문에 그리고 다소 공격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저자 기시미이치로의 결론때문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책을 읽은지 3개월정도 됐지만 그때부터 아직까지 여전히 내 삶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있다. (왠지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재밌는것은 사람이 하나에 푹 빠지게 되면 다른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보고싶은 '그것'을 발견한다. 지나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통감자구이에서 사랑하는 애인의 얼굴을 본다던지,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아까 내기에서 진 당구게임에서 당구공의 궤적이 그려진다던지 하는 그런 현상들 말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빠지고 난 이후부터 가끔씩 곳곳에 숨어있는 아들러식 라이프스타일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거봐 내 안목은 틀림이 없다고 자부하는건 좀 거시기하지만, 또 내멋대로 그런식으로 살을 붙이면 어떤가. 



오늘은, 페이스북에서 만난 아들러다. 사유리의 어록을 모아서 멋지게 만든 포스팅인데 다른말들도 꽤나 멋지다. 아래 내용은 아이교육에 대한 말인데, 아이가 잘한일을 했을 때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평가하는 듯한 칭찬을 하지말고 동등한 입장에 서서 그저 '고맙다'라고 하라는 아들러의 말과 상당히 비슷하다.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칭찬의 역효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면서 부모가 아이행동의 결과에 대한 일방적 칭찬은 아이가 진실을 숨기고 칭찬받는데에만 목표를 집중시킬 수 있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모두들 알고있던 상식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들 그 실험결과와 현상을 보면서 내가 무심결에 하는 칭찬에 이런 면이 숨어있구나 하고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그 다음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역시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것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럴수가.. 나는 그 당시에 만약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마누라가 낳겠지) 칭찬을 하지 말아야겠네!! 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들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아이는 칭찬 한번 못들으며 과도하게 관심을 끄는 말썽쟁이가 되거나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쿨한 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제는 '잘했다'를 '고맙다'라고 언어를 replace시키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관계'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직장 상사와 나의 관계처럼 꽤나 종속적이고 수직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도 아들러는 내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아랫사람으로 보는걸 경계하라고 부탁한다. 하긴 아들러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하관계를 부정하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사유리의 엄마는 그런 심리학적인 지식이 없이 '그냥' 착한일을 한 어린 사유리에게 '고맙다'라고 했다는 것은 매우 신선하다. (물론 때에 따라서 잘했네 못했네를 했겠지) 고맙다.. 고맙다.. 참 좋은 말이다. 그저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나를 도와주니 참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굿모닝 미스터 욤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