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리고, 그래서와 함께 말과 말 사이를 이어주는 '그러나'가 사라진 것 같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오직 글에서만 존재하니까. 놀라운 점은 우리 생활과 실제 하는 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최근,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서 했던 말을 통째로 반추해자면 '그러나'라는 말을 써본 기억이 없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 직접 말로 뱉어보면 알수있다. "그러나!" 아 이 어색한 느낌은 내가 평소에 아니 평생에 이 말을 쓰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만약 직책이 학생회장이라면 대중앞에서 하는 연설에서, 혹은 교수님이 서있고 학생들이 앉아서 수업을 듣는 교실에서 과제발표를 할 때 어쩌면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일상생활이라고 하기에는 딱딱하고 건조한 특수상황일 뿐이다. (내가 방금 '하지만'이라고 썼다! '그러나'라고 쓰지않고) 그렇다. 내가 말하고 싶은 상황은 1:1의 대화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상황인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그러나'를 쓰지 않는다고 완전히 사라졌다고 정의내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그럼 왜? 사라졌을까? 나는, 우리는 왜 BUT를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을까.
BUT(버뜨)는 상대방의 의견에 반대하는 내 의견을 말하려고 시작할때 운을 띄우면서 쓴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그런데'를 사용한다. 이건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어휘의 성격상 '그런데'는 '그러나'와 '하지만'보다 부드럽고 우호적이다. '그러나'를 사용한다는 뜻은 '아냐 너의 의견은 잘못된 구석이 있어',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라면 '그런데'는 '너의 의견이 맞긴한데 좀 더 덧붙이자면', '거의 납득이 되어가는 중이야'의 성격을 띤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상대방에 반기를 들고 내 의견을 피력하고 싶다면 '그러나', '하지만'을 사용하겠지만 상대방과 좀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싶고 굳이 이 팩트싸움을 크게 번지게하고 싶지 않는다면 굳이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는 왜 상대방의 의견에 BUT를 말하는걸 두려워하는걸까? 나는 언제부터 BUT를 일상생활에서 배제하게 되었는가? 나는 인격이 형성되는 초-중-고에서 제대로 토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내면 나는 나만의 다른 의견을 내고 그것이 핑퐁게임이 되는 대화법에 익숙하지 않다. 수업시간에 그런 기회가 없는데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그렇게 할리가 없다. 친목을 최우선으로 하는 친구관계에서는 사실이냐 아니냐보다는 상대방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게 관건이기 때문에 BUT의 사용은 자연스레 차츰 줄어들고 상대방의 기분을 보다 낫게해주는 '그런데'로 순화해서 바꿔 말했을것이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어짜피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풀이를 할 뿐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낼 필요가 없다. 정답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러나'는 변명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하지만..' 이라고 말했을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말대답 하지 말라', '이녀석 또 변명한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그러나'를 우리 생활에서 거세시켜 버렸다.
PS. 흥미로운 점은 영어로 얘기할때는 BUT를 종종 사용한다.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