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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Feb 21. 2016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과의 식사

페루 아레키파에서 한달을 현지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들과 매일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함께하는데,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조그마한 특이점이 있다. 우선 집안에 TV가 없어서 식사때마다 우리는 오로지 대화와 먹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각자 핸드폰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일도 거의 없다. 지금이 2000년전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식사시간동안에는 철저하게 음식과 우리의 몸과 말, 포크와 나이프에만 의존한다. 조명은 그리 밝지도 않고 창문 바깥은 조용한 편이고 언제나 비바람도 없이 균일한 편이라서 대화의 포커스가 바깥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우리는 보통 네명정도 같이 식사를 하는데, 스페인어를 거의 못하는 나로서는 대화의 핵심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대화 참여자는 세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도 언제나 활기찬 상태는 아니고, 자기가 낮에 너무 재밌는 경험을 해서 저녁식사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가끔씩, 아니 종종 대화가 뚝 끊기고 말없이 음식만 먹거나 음식을 다 먹었다면 하릴없이 찻잔만 만지작거리는 상황이 있다. 나는 초반엔 이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스페인어를 잘 못한다는 면죄부가 있었으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 한국에 우리집 같았으면 진작 티비를 켰을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조금 특별한 시간을 그대로 마주해보기로 했다. 혹시 나만 그렇게 어색하게 느끼는 걸까? 노. 이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도 이 가족들은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내다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대화주제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편안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문득, 한국에서 어색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중간규모 이상의 술자리가 생각이 났다. 모두들 쭈뼛쭈뼛 어색한 얘기만 하고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대화가 끊기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얘기한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다들 배고픈가봐? 먹기만 하네", "자 마셔 야~~ 마시자!!", "어우 술 잘마시네~ 주량이 어떻게 돼?"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견디기는 무척 힘들고,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대화주제는 찾기는 힘드니 이런 당황스러운 말만 늘어놓을 뿐이다. 이런 말들이 오갈수록 개인적으로 이 시간과 공간이 몹시 공허해지고 껍데기라고 느껴진채 술잔만 비울 뿐이다. 


못하는 스페인어지만 요령껏 눈치껏 알아듣는 편인데, 이들의 대화에서 또 특이할만한 점은 대화의 소재가 국가단위의 뉴스같은 커다랗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8시? 9시?에 뉴스룸을 거의 챙겨보는 편인데 마침 식사시간과 맞물릴때가 많아서 보통 뉴스를 보면서 밥을 먹곤 했다. 그런데 이사람들은 평소에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것 같다. 세상돌아가는것에 관심이 거의 없다고 느낄정도로 아주 가끔 시청하지만 그것도 식사시간엔 보지않는다. 이들의 대화의 소재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 감상, 본인의 지식에서 알려주는 이야기들, 어디 누구에게서 들은 얘기, 이웃얘기이다. 한편으로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한곳에서 머물러있는 느낌도 든다. 그렇다고 이사람들이 새로운소식을 접하는 걸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주로 그 출처가 내가 아는 사람인 경우다. 이웃이 놀러와서 식사를 하다가 하는 새로운 얘기나 정보에는 호감을 보이며 새로운 지식으로 습득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늘 화제의 뉴스를 인터넷에서 찾거나 얼굴도 모르는 남의 파워블로그에 가서 그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그 이야기를 식사시간에 하는것 같지는 않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대화의 중심이 자기와 자기세계에 있다는 점은 좋아보였다. 적어도 시시콜콜한 연예인 얘기나 가쉽거리로 저녁시간을 보내버리는 일은 없을테니까. 남 이야기를 하다보면 보통 부러워하거나 흉을 보거나 이 두가지가 아니던가? 그 부러움과 욕, 두가지 다 현재의 자신과 자기세계는 빠져버리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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