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는 빈 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골길을 차로 지나가면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딱 봐도 사람이 이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집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집들도 주인이 어딘가는 있겠죠. 하지만 주인은 그 집의 소유자로 되어있을 뿐 그 집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거나 심지어 본인이 그 집의 소유자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보통 그런 시골집은 가문단위로 승계가 되는데 행정적인 등록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 이 집은 누구에게, 저 땅은 누구에게 주는 식으로 절차가 진행됐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되는데, 만약 그 부동산의 가치가 그동안 수직상승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잊혀지진 않았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게다가 아무리 본인 이름으로 부동산이 등록되어있다고 해도 가문의 소유(보통 문중땅이라고 합니다)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개인사정으로 돈이 필요하다고 그 부동산을 마음대로 파는 것은 조금 껄끄러운 일입니다. 설령 팔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큰 돈이 아니라는 것도 주저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보통 옛날집을 기준으로 토지의 일반적인 크기는 100평에서 조금 넓으면 200평 정도인데 평당가를 30~40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매도가는 5천만원 정도가 나옵니다. 물론 적은 금액은 결코 아니지만 판매하기에 단순한 상황이 아닌 경우, 이 부동산은 그대로 두고 나중을 기약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EBS 다큐시선 - 빈집의 두 얼굴>을 보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그렇다고 시골에 집이 비었다고 아무거나 10년 무상으로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도측에서도 그런 조건으로 부동산에 내놓지않고, 그런 조건으로 찾는 매수측 또한 없습니다. 양쪽이 그럴 마음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렇게 결정하기란 그것 또한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7년동안 바로 근처 농촌유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해왔고, 빈 한옥집에 대한 소식도 유학센터 선생님을 통해 듣고 곧바로 찾아가 그 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문의 어르신을 만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엄밀하게 저는 외지인이지만 여기 마을 과 상당히 가까운 인상을 주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믿음', '아는사람의 아는사람'만으로 정말 양쪽에게 괜찮은걸까요? 다행히 저와 어르신은 대화의 거리가 처음부터 멀지 않은 느낌이었고 앞으로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진행하되 계약서를 정확히 작성해서 지키자고 서로 약속했습니다. 저도 도시에서 아파트와 빌라, 주택의 임대차 계약을 해본적이 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여러모로 당황스러웠습니다만 주인어르신도 협조적이었고 중간에 선생님의 존재가 의지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이 집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은 제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굉장히 멋진 일이 될 것 같았기에 용기를 내어 무사히 계약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계약을 진행하던 중, 인터넷에서 저와 아주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제주의 '다자요'라는 회사가 2017년부터 마을에 버려진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숙박업을 10년동안 운영하고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했었는데요. 2019년에 농어촌민박업 관련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사업이 중단되었다가 작년쯤 공유경제 법이 개정되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주에 여행갈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이 회사에서 10년 임대&리모델링 방식으로 만든 '봉성돌담집'과 '도순돌담집'에 한번 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 퀄리티가 굉장히 좋아 보였으니까요. (저는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ㅎㅎ)
우선, 저와 비슷한 사례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사실은 제가 불리한 계약을 해버린 것은 아닌지 조금 불안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는 실제로 이렇게 운영하고 있고 마을에 흉하게 방치된 빈집을 재생하는 사회적인 의미도 있으면서 투자자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고 하니까 사업적으로도 매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야말로 이렇게 지역색이 묻어있는 공간과 개성있는 느낌을 좋아해서 외국여행을 할때면 언제나 에어비앤비로 일반 가정집을 예약했던 성향이라서 이런 집에 더 매력을 느끼고 응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빈집재생 프로젝트가 전국적으로 더 활성화되면 어떨까요? '다자요'도 사업을 시작한지 5년도 되지 않았으니까 임대 계약기간인 10년에 한참 미치지 못합니다. 이 임대방식이 공감을 얻으려면 처음에 약속한 10년이 지나고 원래 집주인에게 잘 반납되고 서로 웃으며 헤어질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서로 윈윈하는 좋은 사례가 하나둘씩 나온다면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방소멸을 막아줄 대안책으로 검토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