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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l 01. 2021

일은 많고?

그때, 엄마의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엄마 미안, 나 또 그만뒀어.”



 메시지 창에 쓴 문장 끝 커서가 깜빡거린다. 깜빡임 속에 엄마의 여러 표정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중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엔터를 누르지 못하고, 오히려 커서는 앞으로 돌아갔다. 커서가 문장의 앞으로 돌아갈 때마다 글자들이 하나씩 지워졌다. 내가 쓴 문장이 전부 다 지워졌을 때, 커서는 텅 빈 메시지 창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안부 메시지라도 보낼까, 다시 그만뒀다는 말을 적을까 하다 결국 아무 말도 보내지 못했다.


 며칠 뒤, 엄마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다.


 “일은 많고?


 메시지를 받자마자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왜 ‘일은 많아?’가 아닌 ‘일은 많고?’일까? 였다. 문장의 어미에 신경이 쓰였다. 그 글자에서 연속성이 느껴졌다. 질문 안에 많은 마음이 따라붙는 것 같았다. 많은 마음을 전부 다 적는 대신에, 꾹꾹 눌러 담아 보냈을 간결한 문장. 그 안에서 많은 마음을 읽어내게 된다.

 나는 거짓말이 섞인 답장을 했다.


 “응, 4월 가부킹이 7월로 밀리긴 했지만 일은 적당히 하고 있어요.”


 일을 적당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둘러대고 있을 뿐이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쉽게 부른다.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묻는 엄마의 말에 또 이렇게 저렇게 거짓말을 이어 붙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한답시고 일 년을 먹고 놀았다. 엄마는 그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줬었다. 막상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니 별것 없었다. 학비가 아까웠다. 결국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을 반복하다 제적당했다. 엄마는 그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방황인지 도망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마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길어야 두 계절씩 두 번의 직장을 다녔고, 세 번째 직장에서 열 번의 계절을 보냈다. 그렇게 또 다른 계절의 문턱에 닿았다. 엄마는 이제야 내가 어딘가에 정 붙이고 제 입에 풀칠하면서 사는구나 싶은 마음으로 열 번의 계절을 보냈으리라.


 엄마는 올해 예순 번째 봄을 맞이했다. 나는 엄마의 계절을 먹고 자랐다. 나는 엄마의 묵묵한 마음을 먹고 자랐다. 그런 것을 알기에, ‘잘해야지, 잘 살아내야지’ 생각하는 순간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혹은 그런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거짓말로 대답했다.


 언제쯤 이 사실을 전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세어본다. 벌써 9일이 흘렀다. 며칠이 더 흐르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그때,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답장을 보낼까? 이런 답장이 올까?


 “정신 차려 이기지배야, 너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유월 중순쯤,   만에 엄마에게 퇴사를 얘기했다. 마음 속 하나의 돌덩이를 치우니, 또 다른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프리선언이랍시고, 여전히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마치 유월까지 회사에 다닌 .


 얼마 전 외주 작업 결과를 말했을 땐 이런 연락이 왔다.


 “프리 선언 처음 작업 성공을 축하해 앞으로 고생한 보람이 있길 기원하고 잘 자고. 엄만 슬기는 네가 하고자 하면 거기까지 되는 그런 사람이라 믿어. 단지 체력이 약한 게 늘 걱정했는데 운동하고 노력하면 근력은 올라가니까 화이팅.”


 그리고, 칠월의 첫날 인 오늘. 엄마에게 이른 아침부터 한 장의 낡은 짤과 함께 연락이 왔다.


 “새로운 달의 시작. 첫날 화이팅해요.”

 

 만약 그때, 엄마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겠지. 내 귀에 닿은 여러 말들 중 가장 아프고 아픈 문장을 골라, 글을 썼던 날. 이 아픈 말이 곧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될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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