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량의 용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까지.
담배를 끊었다. 대신 뜨개질을 시작했다. 담뱃값 사천 오백 원이 아까워서. 그 돈이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 좋은 샤프 한 자루, 서브웨이 샌드위치 하나, 예쁜 마스킹 테이프 하나. 여러 가지 것들을 사거나, 경험할 수 있었겠지만,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실 한 타래였다.
입김이 따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이어서 그랬나? 실이 떠올랐다.
실의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지만, 굵은 아크릴 실 한 타래의 가격이 오천 원 선이었다. 그리고 그 실 한 타래면 작은 목도리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스무 개비의 담배가 하나의 근사한 목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뜨개질을 시작했다.
근사한 목도리로 시작한 뜨개질은 시간이 지나자 근사한 모자가 되기도 했고, 귀여운 에어팟 케이스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귀여운 티코스터가 되기도 했고. 재밌었다. 가느다란 선이 면이 되었고, 그다음에는 형태를 갖춘 무언가로 자꾸만 변해갔다.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 내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들. 그 자체로 너무 재밌었다.
일이 하기 싫고 화가 날 때면, 담배를 피우는 대신 대바늘로 코바늘로 종횡무진하며 뜨개질로 도망쳤다. 그렇게 담배를 끊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직업을 갖게 된 것도 그랬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진 작업을 계속하고 싶었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경제적 활동이 필요했다. 사진을 전공했으니,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학원 선생님, 제품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패션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그리고 리터쳐. 나는 이런저런 사진 관련 직종들을 거치다 리터쳐가 되었다.
직업들을 갖기 전에는, 작업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오만했다. 직업을 갖게 된 나에게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충분한 체력도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만 있었을 뿐, 행동은 없었다. 결국에는 ‘어쩌면 나는 작업으로부터 도망쳐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도 저도 아니게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기술이 늘고, 실력이 늘어도 나는 어딘가에 멈춰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에 지쳤을 때, 직업으로부터 도망쳤다.
직업을 갖는 대신에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멈추고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적당량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알맞을 때도 있는 건 아닐까? 담배를 끊는데 필요한 적당량의 의지 대신,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온 뜨개질처럼.
도망에 도망을 거쳐 자꾸 도망만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내게 알맞은 곳을 찾는, 탈출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