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로 가는 길.
악명 높은 약 700개의 커브길은 멀미약을 미리 먹어서인지 생각보다 굉장히 평화로웠다.
전날 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하던 빠이로 향하는 길이라 그런지 눈과 마음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가야 할 거리가 반 정도 남았을 때부터 갑자기 내리는 폭우.
전날 홍수 재난을 겪어서 더욱 긴장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산 중턱이다 보니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구역들이 있어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 파악도 쉽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누군가 나를 찾을 수는 있는 걸까?
스멀스멀 걱정이 피어오르는 나.
하지만 절벽 옆 커브길을 곡예하듯 운전하는 기사님 옆에서 흔들림 없는 숙면을 취하는 태국 현지인과, 폭우가 내리는 좁은 커브길에서도 앞을 가로막는 오토바이나 차를 만나면 거침없이 추월하는 운전 기사님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아 이건 이 사람들의 일상이지.
내가 걱정할 문제가 전혀 아니었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일상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걱정들을 이렇게 미리 하며 살아왔던가.
빠이에 가까워지면서 날은 점차 갰고,
이윽고 빠이에 들어섰다.
알록달록한 풍경과 낮은 건물,
그리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들의 스쿠터.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을 드디어 마주한 것도 황홀했지만, 빠이에 오자마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미니밴 운전 기사님이었다.
빠이에서는 어디서나 들개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금 많이 과장을 해보면 길을 걸을 때 사람 반 들개 반일 정도로 함께 공존하며 지낸다고 할 수 있는데,
우중 커브길을 그렇게 질주하던 기사님께서 빠이에 들어서자마자 도로 위의 들개들을 보시더니 속도를 10으로 내려서 서행을 하셨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광경이었다.
한국에서 로드킬로 생명을 뺏긴 동물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본 것 같다. 자연과 공존하고, 동물과 공존하며, 사람은 한낱 지구에서 결코 우수하지 않은, 그저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빠이에 오자마자 다시금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