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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16. 2024

하늘이 거부한 타패행 ep.2

홍수 재난, 여권 분실.. 나 빠이 갈 수 있어?


나이트바자(타페게이트의 야시장)는 한 골목길 양옆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나는 타패게이트 쪽 시장이 아닌, 구글맵이 찍어준 반대편의 핑강 쪽을 찾았다.

그것이 이 사태의 시작이었을까,

애초에 림위앙 호텔 사장님께서 나이트바자 쪽이 지대가 낮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호기심이 그 말을 이긴 탓이었을까.



어쨌든 이렇게 강이 되어버린 길을 건너야만 호텔로 돌아갈 수가 있었는데,

인도로 올라가며 걷다 보니 눈앞에 나타난 쥐와 바퀴벌레의 무리들.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10분 넘게 어쩔 줄 모르며 서있는 나를 보던 바로 옆 옷가게 젊은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A : 왜 그러고 서 있어?

나 : 이곳을 건너야 호텔로 갈 수 있는데, 못 건너겠어.

A : 아냐 넌 할 수 있어!

나 : 난 못해ㅠㅠ

A, B : (웃으며) 그럼 일단 여기 좀 앉아 있어.


그들은 가게 문을 닫으며 바쁜 와중에 나를 위해 의자를 펴주며 챙겨주었다.


A: 어디서 왔어?

나 : 한국에서 왔어.

A : 나 한국말 사랑해! (한국어로)

나 : 오 한국말 잘 아네?


이런 식의 대화들이 이어지고,


B: 우리가 일 끝나면 데려다줄게. 업어서라도 건너줄게

나 : 안돼. 나 무거워.

B : 너 **kg 지?

나 :????? 어떻게 알았어????

B : 훗, 나는 프로니까. (그들은 정말이지 능력 좋은 옷가게 직원들이었다)

나 :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

C : 아니, 자주 이러진 않아. 올해는 처음이야. 한국은 이런 일 없어?

나 : 응, 한국에서 나는 경험한 적 없어.

C : 이렇게 치앙마이에 홍수가 나면, 이삼일 뒤에 방콕에 홍수가 나.

나 : 아, 방콕이 아래쪽에 있어서?

C : 맞아.

B : 끝나고 얘가 데려다줄 거야. 얘는 착하고 좋은 친구라 믿어도 돼.


은근슬쩍 C와 나를 엮는 것 같은 친구들의 장난도 귀엽고,

친숙하게 말을 걸고 농담도 건네주며 긴장을 풀게 해 준 너무나도 감사했던 옷가게 젊은이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는데,

오토바이를 타면 이 물을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볼트(오토바이 택시)를 불러보기로 했다.



이윽고 볼트 도착 알람이 떴다.

그런데.

내가 잘못 부른 건지 그는 반대쪽 나이트바자 쪽에 도착해 있었다.


기사님은 내가 보이지 않자 볼트어플로 전화가 왔는데

C가 전화를 친절히 받아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결국 볼트 기사님은 나를 데리러 홍수난 길을 헤쳐 오고,

그런 나를 끝까지 챙겨주던 C.


사실 이렇게 내가 내 발로 이 물길을 걸어갈 거라면 볼트를 부르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모두 챙겨준 덕분에 나는 드디어 호텔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백 년 만의 가장 큰 홍수였다고 한다)



인생 처음 볼트를 타고 안전히 돌아가게 된 호텔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겪고 비도 맞고,

밤새도록 쥐와 바퀴벌레의 잔상이 계속 떠오르는 데다

밤새 내리는 폭우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지만,

다음날 아침. 빠이로 갈 생각 때문인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빠이로 가기 위해서는 700여 개의 커브길을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다고 한다.

미리미리 밥을 든든하게 먹자며 짐을 확인하고 나가려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이 사라진 게 아닌가.


여권은 그렇다 치고 국제운전면허증은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데 사라질 리가.

짐을 풀고, 다시 넣고, 또 풀고 넣으며 10분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둘.

결국 이 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빠이행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긴급여권은 어디서 발급받아야 하는 건지 급하게 찾아보다가,

실낱같은 희망으로 혹시 전날 체크인을 하고 돌려받지 않았길 빌며 일단 리셉션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 직원분들이 계신 곳으로 걸어가는데,

내 얼굴을 본 직원분께서 갑자기 카운터에 있는 뭔가를 집으며 웃으며 내게 말했다.

"Passport?"


오 신이시여.


기뻐하는 나를 보며 경위를 알려줬는데,

어제 내 가방에서 떨어진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을 누군가가 보고 호텔에 맡겼다고 했다.

이런 정이 넘치는 도시 같으니라고.

정말이지 치앙마이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겹다.


(어제 그 볼트 기사님이 아닐까 해서 볼트 어플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볼트 시스템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 답장이 오지 않고 있다. 천사님 답장 부탁드려요..)



가벼운 마음으로 배를 채우러 나선 길.


핑강을 지나 걸어가는데,

어제 내린 비의 여파로 낮은 지대의 피해가 상당히 심각했다.

 


인도로 물이 차고,

좀 더 걸어가니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빗물.


가려던 식당과 카페는 모두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웃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치앙마이의 주민들이 힘들지 않길.

그들에게 피해가 크지 않길 기도하며 떠나는 타패.


하지만 떠나는 그 순간까지 타패에서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빠이행 미니밴을 12시 반에 타야 하는데 이번엔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침수된 도로 때문에 타패에서의 나의 그랩 콜을 받아주는 택시도 없고,

12시 반까지 가야 한다고 말하니 잡힌 택시도 계속 취소되었다.


결국 가장 비싼 택시를 부르고 상황을 설명드렸더니, 최대한 빨리 와준 마지막 희망의 택시.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불행.

일부러 아케이드 터미널이 가까운 타패로 숙소를 옮겨 왔더니

택시 내비게이션은 올드타운 쪽으로 돌아가는 길로 안내를 했고,

중간에 경로 업데이트를 하더니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돌게 했다!



실시간으로 도착 예정 시간은 늘어나고,



결국 40분에 도착한 버스 터미널.


일단 오늘 예약한 빠이 숙소가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기도 전에 예약한 곳이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에

빨리 빠이행 버스부터 다시 예매하러 갔다.

오늘 갈 수 있는 버스가 없다면 택시로 10만 원을 주고서라도 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1시 반 버스 좌석이 남아 있다고 했고,

미리 예약해 둔 명당좌석은 아쉬웠지만 그다음으로 좋은 좌석인 2A좌석을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 오늘 빠이를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호텔에 도착 시간을 다시 알려준 뒤 드디어 한 시간 후 탑승.



밤에 내리는 폭우에 과연 빠이도 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던 빠토피아 행


어제저녁엔 홍수 재난을 겪고,

새벽엔 여권을 잃어버려서 당황하고,

빠이행 버스 명당자리 예약해 놓고 놓쳤지만

이런 게 여행이고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생각했지만

여권 재발급 안 해도 되었다는 것도 너무 행운이고,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죽음의 빠이행 커브 코스를 자면서 갈 수 있을 테고,

1시 반으로 미뤄진 차에는 한 라인 당 한 명씩만 타서

중간에 허리가 아프면 잠시라도 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목적지였던 빠이 기간 내내 비 소식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게 행운으로 이어진 타패에서의 불행.


내 좌우명은 아모르파티다.

모든 건 운명이라는 뜻인데, 이 운명은 나의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내가 더 잘되고 행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일.


이번 여행도 나의 좌우명처럼

불행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행운으로 바뀌었고,

내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 더 행복하기 위해서 겪어야만 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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