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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거부한 타패행 ep.2 (치앙마이 절망 편)

홍수 재난, 여권 분실.. 나 빠이 갈 수 있어?

by keemondo


치앙마이의 가장 대표적인 야시장 ‘나이트바자’메리어트 호텔 옆 ‘Night Bazzar’와 바로 맞은편에 있는 ‘Kalare Night Market’을 모두 총칭한다.


구글맵으로 나이트바자를 검색했을 때 지도는 메리어트 쪽이 아닌 반대편 핑강 쪽의 깔래 야시장을 내게 안내해 주었고, 나는 맞은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Night Bazzar 간판을 흘깃 보면서 깔래로 들어갔다.


이것이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림위앙 호텔 사장님께서 나이트바자 쪽은 지대가 낮으니 비가 많이 오면 조심하라고 했는데

호기심이 그 말을 이긴 탓이었을까.



어쨌든 강이 되어버린 길을 건너야만 나의 소중하고 아늑한 호텔로 돌아갈 수 있었고, 나는 침수되지 않은 길이 나올까 싶어 위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약 10미터쯤 걸었을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연실색하며 걸음을 멈췄다. 발치에 쥐와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필 나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바퀴벌레가 발을 타고 올라올 것만 같은 상상에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옷가게 젊은이에게 혹시 위쪽으로 걸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절망스럽게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얼어붙은 채 계속 서 있었다.


직원 A : 왜 그러고 서 있어?

나 : 이곳을 건너야 호텔로 갈 수 있는데, 못 건너겠어.

직원 A : 아냐 넌 할 수 있어!

나 : 난 못해ㅠㅠ

직원 A, B : (웃으며) 그럼 일단 여기 좀 앉아 있어.


그들은 가게 문을 닫는 바쁜 와중에도 나를 위해 의자를 펴주었고, 직원 둘과 그들의 친구라는 이가 돌아가면서 내게 말을 걸어주며 챙겨줬다.


직원 A : 어디서 왔어?

나 : 한국에서 왔어.

직원 A : 나 한국말 사랑해! (한국어로)

나 : 오 한국말 잘 아네?


직원 B: 우리가 일 끝나면 데려다줄게. 업어서라도 건너줄게 :)

나 : 안돼. 나 무거워.

직원 B : 너 53kg 지?

나 :????? 어떻게 알았어????

직원 B : 훗, 나는 프로니까. (그들은 정말이지 능력 좋은 옷가게 직원들이었다)


나 :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

친구 C : 아니, 자주 이러진 않아. 올해는 처음이야. 한국은 이런 일 없어?

나 : 응, 한국에서 나는 경험한 적 없어.

친구 C : 이렇게 치앙마이에 홍수가 나면, 이삼일 뒤에 방콕에 홍수가 나.

나 : 아, 방콕이 아래쪽에 있어서?

친구 C : 맞아.

직원 B : 끝나고 얘가 데려다줄 거야. 얘는 착하고 좋은 친구라 믿어도 돼.


은근슬쩍 C와 나를 엮어주려는 친구들의 장난도 귀여웠고,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어려 보였다..)

친숙하게 말을 걸고 농담을 건네주며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옷가게 젊은이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침수된 도로를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용기 있게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번뜩 오토바이를 타면 이 물을 건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4일 동안 한 번도 그랩이나 볼트를 이용하지 않았었다)

치앙마이 도착 후 처음으로 볼트(오토바이 택시)를 불러보기로 했다.


미리 어플을 깔아 두고 카드도 입력해 둔 상태라 생각보다 이용하기가 편했다. 지도에서 신중하게 위치를 찍어서 볼트 부르기에 성공했고, 옷가게 젊은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와중에 볼트 도착 알람이 떴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고 예상치 못한 사건은 늘 발생한다.


그는 반대쪽에 도착해 있었다.




기사님은 내가 보이지 않자 볼트 어플로 전화를 걸었고, 태국어를 못하는 나와 태국어만 쓰는 그의 창과 방패 같은 통화가 이어졌다. 보다 못한 C는 휴대폰을 넘겨받아 현재 나의 상황을 설명해 줬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C : 오토바이가 여기로 못 와서 네가 건너가야 한대.


비보에 말문이 막힌 나.

(? 그럼 대체 볼트를 왜 부른 거야..?)


내 표정을 본 그는 다시 볼트남에게 전화로 뭐라 말을 했고, 그들은 타협을 이룬 듯했다. 그 타협은 바로 볼트 기사님이 나를 데리러 홍수난 길을 헤쳐 와 내 손을 잡고 다시 홍수를 건너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내가 내 발로 이 물길을 걸어갈 거라면 볼트를 부르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모두 나를 챙겨준 덕분에 드디어 호텔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특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봐 주고 챙겨준 C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그는 정말 친구들의 말대로 착하고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렇게 타패 지역을 침수시킨 이번 홍수 사태가 백 년 만의 가장 큰 홍수였다고 한다.



인생 첫 볼트와 함께 안전히 돌아가게 된 호텔.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겪고 비도 맞고,

밤새도록 쥐와 바퀴벌레의 잔상이 계속 떠오르는 데다

밤새 내리는 폭우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지만,

다음날 아침. 빠이로 갈 생각 때문인지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빠이로 가기 위해서는 762개의 커브길을, 그것도 작은 커브길이 아니라 거의 180도로 휘어진 커브길을 돌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멀미가 심하다고 한다. 미리 밥을 든든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확인하고 나가려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이 사라진 게 아닌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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