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닮은 살림

원목 도마와 조리도구를 오일링하며

by 김우드

미루고 미뤘던 원목 도마와 조리도구 오일링을 했다. 오늘 계획에 있던 일은 아니었다. 새로 산 도마가 어느새 산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있었고, 이참에 자주 쓰는 조리도구들까지 한꺼번에 해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우드 조리도구 오일링은 몇 달 전부터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며 마음속 할 일 목록에 올라 있던 일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실행에 옮긴 셈이다. 왜 이렇게 자꾸 미루게 되는지 모르겠다. 마음의 진입장벽이 높은 집안일 중 하나랄까.


나뭇결을 따라 사포질을 하고, 부드러운 행주로 가루를 털어내는 작업을 두 번 반복한다. 그다음 오일을 꼼꼼하게 바르고 충분히 건조한다. 마른행주로 여분의 오일은 닦아낸 뒤 가볍게 물로 헹구고, 물기를 닦아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려주면 끝.


과정은 단순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손에도 힘도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거칠고 하얗게 일어나 있던 주걱을 사용할 때마다 느껴졌던 불편한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다. 다시 새것처럼 매끈해지고 광이 살아난 도마와 조리도구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도 든든해진다. 이 기물들에 나의 시간과 정성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구나 싶어서. 새것보다 내 손때와 시간이 스며든 것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냄비나 주방용품을 십 년 넘게 쓰는 엄마를 보며, 어떻게 같은 물건을 저렇게 오래 쓸 수 있을까 신기해하던 때가 있었다. 주방용품뿐 아니라 옷이나 신발도 늘 깔끔하게 오래 사용하는 엄마의 성향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살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이소에서 저렴한 주방 용품들을 사서 쉽게 쓰고, 쉽게 버리곤 했던 그때의 나는 그 경지에 도무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이 주걱은 태국에서 산 건데, 이 스푼은 방콕에서 샀고.. 벌써 2년이 지났네.' 하고 혼잣말을 하며 하나하나 구매했던 시간과 장소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꽤 오랜 시간 사용해 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이 담긴 살림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이제 나의 주방에 놓인 여러 기물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나의 취향과 성향, 생활의 속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살림은 결국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흔적 같기도 하다.


2025.12.17

@keemwoo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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