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고 지나오기
남편과 긴 여행을 이틀 앞두고, 청소와 빨래, 협업 촬영까지 미리 해둬야 할 일들을 하루 종일 해치웠다.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결혼 후 처음으로, 연말을 집을 떠나 보내게 됐다. 정말 손꼽아 기다렸던 여행이지만, 집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던 익숙한 연말의 풍경을 올해는 놓치게 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그래도 막상 떠나면 다 잊고 그저 행복해하겠지.
우리 집에서 연말 분위기를 더 즐기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괜히 크리스마스 리스 알전구에 불을 켜고 다시 앉았다. 연말 느낌 물씬 나는 재즈를 들으며 책을 읽는데,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불현듯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10개월 전 암 진단을 받았던 일이 아득히 먼 일처럼 느껴졌다. 1년도 되지 않아 되찾은 이 평온한 일상이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다시 잃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이런 평온함은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걸, 이미 한 번 배웠으니까.
오늘 오후의 그 고요함이,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남편과 함께 보냈던 평온한 주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새해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도전에 설레면서도, 새로운 사람과 환경, 새로워질 일상까지 모두 두려워졌다. 어떤 이유로든 내가 다칠까 봐 겁이 났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고 최근에 구매한 향이 좋은 캔들을 가져와 불을 붙인 뒤 다시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반복하며 호흡에 집중했다. 여러 생각들이 떠올라도 다시 호흡으로 떠나보냈다.
'그래, 내년에도 이렇게 지내면 되는 거야.'
이제는 내 마음이 흔들릴 때,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됐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