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에 의미를 불어넣는 일
스스로가 가장 무능하다고 느낄 때, 유일하게 내 몫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 건 글쓰기였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하던 모든 일들을 멈추고 그저 회복에만 전념할 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일은 나의 경험과 감정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나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지만, 결국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나의 경험과 감정을 글로 기록하며, 나는 내가 살아있다고 안도했고, 잔인했던 지난 시간 속의 나를 위로했으며, 글 속의 다짐처럼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힘을 얻었다.
글을 쓰며 수많은 나를 발견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칭찬받는 것이 마냥 행복했던 어린 나를 만났다. 너무 많은 사랑과 칭찬이 실패를 두렵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빠의 인정이 내겐 가장 큰 결핍으로 남아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판검사, 선생님, 공무원 등은 나의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만 품은 채 방황하는 나를 발견했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미워했던 나를 용서했다. 계획대로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나를.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 버렸던 과거의 나를 용서했다. 그 결정을 후회하는 나를 용서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소비와 과시로 인정욕구를 해소하려 했던 나를 용서했다.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병이 들 때까지 혹사시킨 나를 용서했다.
글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글 속의 나는 형체는 없지만 실제 하며, 실제 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만을 기록하지만, 때로는 하지 못 할 다짐들도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더 강하다. 그리고 그 힘은 현실의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글 속에서 만큼은 나는 주인공이 된다. 오천만 국민 속 이름 없는 한 사람일 뿐인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는다. 나의 글에 깊은 공감과 함께 위로가 되었다고 전해올 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느껴졌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베어내도 되는 잡초 같은 삶이라 느껴지다가도, 그 안에서 피어난 들꽃 한 송이는 될 수 있겠구나,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단 몇 명의 눈에만 닿을지라도, 그것만으로 내 존재의 이유가 충분해졌다. 이름이 없어도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글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글을 쓰며 모른 척하고 싶었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위로하고, 용서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아끼게 되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흔들리지 않는다. 스스로를 무능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주면 그만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니까. 결과가 어떻든 지금이 오기까지 애쓴 나를 가장 인정해줘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의 꿈은 앞으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나만의 의미를 불어넣고,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 기록을 브런치에서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지난 4월 아파트 둘레길 산책 중에 발견한 이름 모를 들꽃.
벤치 의자 좁은 틈 사이로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며, 잔잔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 좁은 틈 사이로 나오지 못했다면 눈길 한 번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
이 꽃도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찾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