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못해도, 여전히 사랑받는 며느리

아픔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고부간의 정

by 김우드

결혼 3년 차, 내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은 우리 부부에게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고, 시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도 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언제, 어떻게, 이 상황을 말씀드릴지 혼자 수없이 장면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막상 실제 그 순간에서는 그 어떤 상상도, 어떤 준비도 소용없어졌지만 말이다.


삼성서울병원 첫 외래 진료 날, 운 좋게도 수술 전 검사들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MRI와 CT까지 찍고 나니 저녁 6시가 넘었고, 식사를 하고 나니 7시였다. 그리고 삼성서울병원과 20분 거리에 계시는 시부모님 댁이 생각났다.

"오늘 말씀드리자. 연락드려보자"


다행히 어머님도, 아버님도, 시동생까지 모두 집에 계셨다. 20분 뒤 시부모님 댁 주차장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에는 시부모님을 처음 뵈러 가던 날보다 더 긴장이 됐다. 늘 그렇듯 환하게 맞아주시는 어머님을 보는 순간.. 시나리오에 없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처음으로 시부모님 앞에서 엉엉 울어버렸던 날.


남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지금 삼성서울병원 갔다 오는 길이야. xx이가 암 진단을 받았어."

"뭐????????"


앞뒤 없이 던진 남편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이날까지의 상황을 차분히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아버님은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어머님은 여전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한순간에 암에 걸린 며느리가 됐다. 심지어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며느리가 됐다.


아버님께서는 늘 아이 문제는 부부가 판단할 문제라며 상관하지 않으셨지만,

"A는 엄마 친구에게 큰 선물을 줬대. A 와이프가 임심 했다더라."

어머님께서는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시면서도 은근히 손주를 기대하시는 마음을 보이셨었다.


나는 점점 출구 없는 동굴을 파 들어갔다. 내 몸과 마음을 추슬러도 모자란 상황에서 내가 암에 걸린 게 죄스럽고 주눅이 들었다.

'옛날 같으면 소박맞을 일이라던데.. 내가 아픈 것보다 아들이 나 같은 며느리를 만난 것을 안타까워하시겠지. 이제 나를 미워하실까?'


하지만 어머님은 나를 단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만 보지 않으셨다. 임신에 관련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고, 내가 수술받기 전까지 잘 먹고, 마음 편히 지내기만을 바라주셨다.


수술 전, 몸에 좋은 걸 챙겨주고 싶으셨을 텐데도 한참 예민해서 가려먹던 며느리의 마음을 존중해 주셨던 어머니. 수술 후에도 암환자인 나를 위해 외식 메뉴도 배려해 주셨던 시부모님.




수술 전날, 어머니께서 보내신 메시지를 읽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는데..

'너네 둘 건강만 생각하고 살았으면 한다.'


그 말씀은 아이가 없어도, 며느리가 어떤 모습이어도 좋으니, 둘이서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으라는 말씀 같았다. 내 마음을 아신다는 듯이,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라는 위로 같았다. 어머니의 말씀 덕분에 더 편한 마음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 전, 나는 첫 번째 정기검진을 위해 삼성서울병원에 갔었고, 검사를 마치고 어머님과 점심을 함께했다. 그날 어머님과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눴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곧 결혼할 시동생이 어머님댁 근처에 신혼집을 얻어 사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걔네가 근처에 살고, 아기 낳고 그러면 네가 괜히..."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끝까지 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어머니, 둘째 며느리가 아이 낳고 그러면 제가 슬퍼하고 마음 아파할까 봐 걱정하셨어요.. 아니에요 어머니, 저희 오히려 조카 기다리고 있는걸요. 저 정말 괜찮아요."


그저 축하하고 기쁨으로 가득해야할 일까지 내 마음을 헤아려주셨다니..! 어머님의 깊은 마음에 진한 감동과 함께 더욱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아이를 못 낳는다고 미워하시진 않을까 걱정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어머님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시고, 예전과 다름없이 가족으로 품어주셨다. 어머님의 깊은 사랑속에서 나는 죄책감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 나 자신을 되찾아 회복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어머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더 단단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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