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내려놓자, 여유가 찾아왔다
이번 주, 회식과 야근으로 바빴던 남편은 오늘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이번 주말은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에, 나는 남편이 푹 잘 수 있도록 깨우지 않았다. 남편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단풍 구경이나 갈까 하다가 우리는 뜬금없이 서울 서촌으로 향했다.
오후 4시 가까이 되어 서촌에 도착하니, 영추문 앞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엔 수많은 인파가 가득했다. 몇 주 전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깊어진 가을의 풍경 속에서, 모든 이들이 이 도시와 이 계절, 그리고 이 날씨를 같은 마음으로 즐기고 있는 듯했다.
사진으로 우리의 오늘을 담으며 시간을 보내다, 사람들을 피해 그나마 한적한 한옥 카페를 찾았다. 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는데, 지붕 위로 노랗게 익은 은행잎과 먹음직스럽게 익은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풍경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전에 갔던 비건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할 겸 수성동계곡 방향으로 옥인길을 걸었다. 2018년 가을,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던 그해 가을에도 우리는 이 길을 함께 걸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도 두 손을 꼭 잡고 그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주변 상점과 카페들은 많이 바뀐 듯했지만, 우리에게 달라진 건 부부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에 카페 겸 와인바를 발견했다. 마침 야외 자리에 앉아 계시던 손님들이 일어나며, 우리는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 앉아 나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남편은 따뜻한 말차라떼를 마셨다. 오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정말, 계획 없이 보내는 일상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작년 같으면 서울 가기엔 늦었다며 집에 있자고 했을 나였다. 남편은 늘 “뭐가 늦어, 지금 출발해도 충분히 놀다 올 수 있어!”라며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막히는 도로와 주차 문제 등을 떠올리며 비효율적이라 거절하곤 했다.
오늘도 잠시 '너무 늦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점심을 준비해 먹고, 되는대로 준비해 나섰다. 결국 오후 4시가 다 되어 서촌에 도착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오히려 즉흥적으로 떠나서 얻은 모든 순간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많은 생각과 완벽주의를 내려놓기로 한 올해부터 나는 비로소 '모든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게 망한 것처럼 느꼈던 예전의 나는 이제 없다.
계획없이 지내는 것도, 여유를 갖는것도 연습이구나 싶다. 이렇게 지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되는대로 다녀오면 되지!", "되는대로 놀다오면 되지!"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이런 여유를 품고 살아갈 날들이 정말 기대되고 설렌다!
2025.11.08
@keemwood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