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가진 것 같은 말 한마디
평소에 뭘 사겠다고 먼저 말하는 법이 없는 남편이, 회사에서 신는 슬리퍼가 닳아서 사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몇 달 전에도 같은 얘기를 했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닳았으면 사야 한다고 말을 꺼냈을까. 생각해보니 2년은 신었을텐데, 보지 않아도 낡아 있을 슬리퍼가 눈에 훤히 그려졌다. 그래서 오늘은 남편의 실내화도 사고, 내가 갖고 싶었던 캔들도 살 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남편은 늘 스스로에게는 인색하면서도, 내가 관심을 보이거나 갖고 싶은 건 뭐든지 사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지난주, 14만 원짜리 운동화를 사면서도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던 사람이, 이미 운동화가 여러 켤레 있는 나에게는 이 브랜드가 발이 편하다며 나도 하나 사라고 권한다.
수족냉증이 있는 나는 오늘 백화점에서 따뜻해 보이는 양털 부츠 실내화를 우연히 발견했지만, 가격을 보고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그걸 만지는 걸 보자마자 "사!"라고 말했고, 7만 원이 넘는다는 가격을 듣고 나서도 망설임 없이 "사!"라고 했다.
뭐든 주저 없이 "사!"라고 말해주는 그 말 한마디.
실은 그것들을 모두 갖는 것보다,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이미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정말로, 나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리고 늘 변함없이 그 말을 건네주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하다!
2025.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