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좋은 어른
어제 택배 한 상자를 받았다. 들기름과 참기름, 표고버섯 가루와 참깨가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3년 반 동안 일했던 첫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씩 팀장님이 바뀌던 시절. 네 분의 팀장님 중 두 번째 팀장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2019년, 단 1년을 함께 일했을 뿐인데, 팀장님께서 먼저 퇴사하신 뒤에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8월, 내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친 뒤 회복 중일 때, 팀장님 생신을 앞두고 드린 전화에서 나의 상황을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담담하게 말씀을 드렸지만, 팀장님의 따뜻한 위로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다. 그때 "부모님께서 표고버섯을 재배하시니 보내줄게요."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주신 것이다.
팀장님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던 어른 중 가장 ‘좋은 어른’이었다. 드라마 ’ 나의 아저씨‘ 속 이선균 배우가 연기했던 그 인물처럼, 그 누구에게도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고,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셨다. 유관부서와 서로 업무를 미루며 감정싸움이 잦던 때에도, 팀장님 친화력과 대화 스킬로 어떤 상황이든 원만하게 풀어내셨다. 팀장님이 오신 뒤로는 서로 흔쾌히 업무를 조율하고 도우며 일할 수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일이 재밌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전까지는 같은 팀이라고 해도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지만, 팀장님과 일하면서 처음으로 팀에 소속감을 느꼈고, '힘을 과시하지 않고, 상대를 안전하게 만드는 어른'을 경험했다.
얼마 전 '유퀴즈'에 유방암 투병 중인 개그우먼 박미선 님이 출연하셨다. 많은 얘기 중 후배 장도연 님이 보냈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도연이 같은 경우에는, 선배님 어떠세요? 가 아니라 미선나무가 있어서 문득 생각나서 보냅니다."라며 보냈다는 이야기.
생각해 보니 팀장님께서도 나에게 그런 연락을 해주셨다. 하늘이 높고 푸르렀던 9월 초, 하늘이 엄청 파랗길래 소식을 전하신다며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주셨다. 늘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을 팀장님만의 담백한 방식으로 조용히 전해오셨던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요즘 어때?"라는 질문은 어쩌면 작은 부담이 된다. 나의 상태나 기분을 잘 설명해야 하고, 가능한 긍정적으로 대답해야 할 것 같은 압박도 생긴다. 하지만, 개그우먼 장도연 님과 팀장님의 메시지는'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그저 '당신이 생각났다.'라는 따뜻한 마음만이 담긴 연락이었다. 그저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듯한, 잔잔하지만 힘 있는 위로.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연락은 상태를 묻는 연락이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전하는 연락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팀장님이 보내주신 표고버섯 가루를 소고기 뭇국에 넣으며,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한 가지를 다짐했다. 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잔히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2025.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