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조차 놀라운, 차분해진 일상
차분하지 못하고 급한 성격에, 요리를 할 때면 늘 순서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자르고 넣는 나. '나는 왜 요리만 하면 주변이 더러워지지?' 언제나 의문이었다. 요리할 공간은 항상 부족했고, 냉장고를 몇 번이고 열고 닫으면 양념을 꺼내다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참 비효율적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늘 그런 것 아니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할 때 특히 더 그렇다.
성격은 급해도 책임감은 강한 편이라 브랜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더 천천히, 더 여유를 가지고 진행했다.
오늘은 협업 중인 브랜드의 두유제조기 제품 촬영을 위해 미트 토마토 파스타 소스를 만들기로 했다. 사실 요리를 해야 하는 협업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두유제조기는 늘 궁금했던 제품이라 한 번 진행해 보기로 했다.
재료를 먼저 깔끔하게 손질하고, 먹기 좋게 잘라 한 곳에 모아둔 뒤, 필요한 양념까지 미리 꺼내두었다. 그러자 공간도 부족하지 않고, 훨씬 정돈된 상태로 요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촬영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분명 평소와는 달랐다.
두유제조기 촬영이라 직접 볶거나 끓일 필요가 없어서, 원하는 모드를 설정해 두고 작동하는 동안 도마와 칼, 재료를 담았던 그릇들을 먼저 싹 치웠다. 그리고 음식을 담을 그릇을 고르고, 테이블 세팅까지 마쳤다. 요리를 하면서 이런 여유를 느껴보다니.
요리조차도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해내니, 번거롭고 복잡해 보이던 과정도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조립을 해야 하거나 처음 사용하는 전자제품을 마주했을 때, 설명서를 찬찬히 읽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일단 눌러보고, 될 것 같은 대로 맞춰보는 행동파다. 요리책이나 레시피를 봐도 적힌 순서대로 볶지 않고 마음대로 넣어버리고는 "맛만 있으면 되지!"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오늘은 구도도 한 번 더 확인한 뒤 촬영했고, 다시 여러 번 찍는 일 없이 정말 만족스럽게 촬영을 마쳤다. 요리도, 촬영 결과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물론 예전만큼 많은 일은 하지 않지만, 분명 하루에 해내는 일은 여전히 적지 않은데, 왜 이렇게 여유가 생긴 걸까.
남편이 야근을 해서 혼자 저녁 여섯 시에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 주방 일을 마감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 오방난로를 켜고, 30분 정도 책을 읽었다. 이런 여유가 생기다니!
아마도 예전보다 덜 조급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더 많이 하려 애쓰던 마음 대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하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고, 내 몸이 먼저 속도를 낮춰준 덕에, 마음도 함께 속도를 늦추게 된 것일지도.
예전의 나는 뭐든 빠르게 해내고 일 분 일 초를 '생산적인 것'에 몰두했지만, 늘 조급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았고, 요즘의 나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꾸준함'에 '천천히'를 더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요리 과정이, 그 변화를 조용히 깨닫게 해 준 것 같았다.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