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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Oct 06. 2022

나는 비 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쏟아지듯 내리는 거 말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어릴 적, 남자는 자기 몸은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국술원이라는 무술도장을 다녔었다. 국술원은 2층 정도 되는 건물의 지하에 있었는데, 건물의 구조가 조금 특이해서 도장을 가려면 지하실로 내려간 다음, 통로를 조금 걸어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통로는 특이한 냄새로 가득했다. 지하실 특유의 곰팡내와 비 맞은 흙내가 섞인 독특한 냄새였는데,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지하실 통로에 멈춰 서서, 킁킁거리며 향을 탐닉하곤 했다.

비가 올 때 바깥세상을 보면 평소보다 다양한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밤에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면, 주변 차들의 조명과 신호등, 불 켜진 빌딩의 창문이 서로 다양한 빛깔을 내뿜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김 서린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창문이 한 폭의 추상화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비가 내리면 짜증이 날 때도 많다. 앞서 말한 모든 감상적 표현들보다는, 걸을수록 젖어들어가는 바지 밑단이나, 늘 깜빡하고 잃어버리는 우산이라든지, 아니면 어느새 축축해진 양말 같은 것들이 먼저 생각날 때도 많다. 그래도, 그래도 가끔씩은 그냥 감성에 젖은 채로 비 오는 하늘을 만나고 싶다. 왜냐고? 음, 그냥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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