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함께 근무할 때 죽이 잘 맞았던 사이라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선배가 최근 업무차 미국의 필리 조선소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
그 말도 많았던 필리 조선소 말이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바로 그 조선소. 선배가 관리해 주던 선박이 미국 입항 중 사고가 났고, 긴급 수리를 위해 부득이하게 미국 내 조선소를 수배하여 입 거했다고 했다.
'그냥 긴급 수리 후에 중국으로 돌아와서 입거를 했어야 했어.'
선배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이유를 물으니, 선배는 기관총을 발사하듯 미국의 조선업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도크가 너무나 낙후된 상태였다고 했다. 도크에 접안을 하는데, 도크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요철 같은 장애물들이 많았던 데다가, 도크의 사이즈도 소형 선박 위주라 사고 선박이 입거하기에 매우 타이트했다고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크 접안을 위해 승선한 도선사가 이 정도의 큰 선박을 접안해 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관리도 안 된, 사이즈도 매우 타이트한 도크에, 실력이 부족한 도선사의 컨트롤로 인해 선박이 입거 과정에서 데미지를 매우 많이 받은 것이다.
'수리하러 들어가서 수리할 거리를 만드는 게, 이게 창조경제 아니냐?'
선배의 불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리 엔지니어가 수배가 되질 않아서 꽤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도크 내에서 숙련된 수리업자를 수배하는 데 시간이 매우 걸렸고, 어찌어찌 수배를 해서 수리를 진행했으나 납기를 전혀 지키질 못해서 도크 페이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수리도 못하는데, 납기도 안 지켜. 학을 뗐다. 학을 뗐어'
조선업을 미국 땅에서 다시 부흥 시킨다는 건, 컴공과 학생이 건설업 현장에서 에이스가 되는 것보다 힘들 일일 거라는 게 선배의 마지막 말이었다.
출처: 한국은행
2024년 말 기준 중국 조선 업체가 보유한 선박 수주 잔량은 전 세계의 58.4%를 차지하며, 남은 수주량은 한국(23.6%)과 일본(8.4%)이 가져가고 있다.
간단히 말해 전 세계의 모든 배들이 동아시아에서,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이유는 조선 산업이 3D 업종이라 선진국에서 꺼려 하기 때문이란 말들이 많았다. 일은 일대로 힘들어, 임금은 후려칠 대로 후려쳐, 그렇게 연명하는 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조소 섞인 비아냥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하나의 사실이 있다. 역사적으로 해상운송은 전 세계 교역량의 약 80%를 담당해 왔다는 점이다. 이 말은, 거의 대부분의 화물이 배로 운송되다는 것이며, 배를 만드는 조선업은 세계화로 전 세계 물동량이 늘어난 현대에도 필수적인 산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앞서 말했듯, 세계 경제의 혈관과 같은 해상물류를 담당하는 바로 그 선박들이, 현관을 타고 흐르는 피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 국가적으로 조선업을 놓지 않았기에 20%를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예전의 영광을 잃은지 오래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조선업 역량으로는 확장에 한계가 있다.
전 세계 신조선 준공 추이, 출처: 일본조선공업회(SAJ)
결론적으로, 배는 한국과 중국 두 국가가 만든다는 것이다. 아니, 대부분 중국이 만들고, 일부를 한국이 만든다는 게 조금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중국의 조선업 역량이 그 정도가 되었다. 몇몇 특수 선종을 제외하면, 한국의 조선업이 중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지니기 힘들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격적으로도, 퀄리티적으로도 중국에 뒤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한국은행
이런 가운데 전쟁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결국 조선업 역량이란 군함 건조 역량과도 같은 말이다. 아무리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강력하더라도 태평양 너머에서 해전이 발생했을 때 적군을 언제까지고 막아낼 수 있을까? 스타를 생각해 보자. 물량 앞엔 장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미국 내 조선업 부흥을 천명했다. 하지만 이 글의 초입부에 서술했듯, 그의 바람은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란 매우 힘들다. 그리고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내 인사들도 이 사실을 주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 오스탈 인수 시도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