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인 이유로, 나는 성인이 된 2010년대부터 2020년까지, 그리고 COVID-19 이후 해외를 자주 돌아다녔다. 엄청 멋진 그런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해외로 나가는 일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출장과 같은 개념이었다.
그렇지만 해외를 들락날락 한 이상, 현지인들과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국내에서 주로 업무를 처리하는 분들보단 많았다.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현지 에이전시 및 업무 담당자들과의 유대는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 우리는 소위 말하는 스몰 톡을 자주 해야 하는 처지였다.
외국인과 소통하기 전 나는 영어를 걱정했다. 일단 언어가 되어야 말을 하든 말든 하니까. 하지만 1차 관문인 영어를 통과하면 그다음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문화적 이질성이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는 매우 다르다.
어디서 왔어? 도시 좋다. 우리나라 와 본 적 있어? 와 같은 상투적 질문이 오고 가고, 그 이후 정적이 찾아온다.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니 교류할 접점이 부족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축구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고,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의 사람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중동도 마찬가지였다. 지성이 형과 함께한 10년간의 EPL 시청 경험 덕분에 그들과 자연스러운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수 있었다. 뭐든 하면 도움이 된다.
그들과 교류하며 느낀 점이 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판단이기에 검증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일을 하는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처음 외국을 나갔던 201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내가 한국이라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강남스타일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10년대 중반부터 거래처 사람들이 BTS와 블랙핑크 이야기를 꺼내더니, 20년대가 넘어서는 사촌 동생이 좋아한다. 딸이 좋아한다며 나는 처음 들어보는 보이그룹, 걸그룹의 이름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산행이나 기생충 이야기를 꺼냈고, 어떤 사람들은 나는 처음 들어보는 한국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한국인을 매우 힙하고 세련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 중남미 어디를 가든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면 그들은 호의적인 태도로 우리를 대했다. 부산을 가보고 싶다고 말하거나, 딸이 한국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한국인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고 멋지고 쿨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일본과 중국이 존재하는 한, 한국이라는 나라가 동아시아를 대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K-문화라는 것이 해외에서 파생 문화와 같은 개념의 마니악 한 장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약 15년 전, Korea에서 왔다는 내 대답에 김정일이란 이름을 내뱉던 그들이 지금은 한국산 선크림을 그렇게도 애타게 찾고 있는데. 파생 문화로 시작한 물결이 지금은 아마존에서 판매 수위권을 기록하는 화장품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심엔 우린 BTS를 비롯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분에 아시아뿐만 아닌 다른 많은 지역의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예쁘고 잘생겼다고 느끼며, 그들의 피부와 스타일을 따라 하기 위해 한국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화장품과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한다.
K-뷰티라 불리는 미용 기기, 화장품의 선전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25년도 1분기 화장품 회사들의 매출을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그들이 진출하고 있는 지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투의 1분기 매출을 보라, 유럽과 중동에서 이 회사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에이피알의 경우엔 YoY로 매출이 무려 2배 가까이 늘었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우리가 프랑스나 일본이 되려면 지금의 노력을 꾸준히 쌓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달리 생각하면,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10년간의 밑 작업 끝에 이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여기서 끝일까, 이제 시작일까. 잔에 물이 반쯤 차 있는지, 반쯤 비어있는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