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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Oct 29. 2022

아스라이

몽롱한 기분에 눈을 떴다. 세상이 핑핑 돌아. 어지럽다. 조금 두렵다. 이렇게 눈을 떠도 되는 걸까? 찬찬히 일어나 보기로 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문이 열린 곳이 없는데, 어떻게 바람을 가둬 둔 걸까? 머리가 지끈거려 고민하기를 그만두었다. 다른 생각을 하자. 생각이 많은 건 늘 좋은 일이니까.

기억나? 그날 우리가 잡았던 서로의 손 말이야. 그 속에 담겨있던 설렘 말이야. 이렇게 생각에 잠기면 문득 생각이 나. 자주 생각하지는 않아. 소중한 건 꺼내보기 어려운 법이잖아. 그때는 지금처럼 바람이 선선히 불었던 날씨였어. 그런데 그 순간에는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의 포근함처럼 말이야….

정신을 차리자. 그렇게 다짐했다. 옛 추억까지 불러올 필요는 없잖아. 다시 눈을 떴다. 하지만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안경을 쓰는 것도 아닌데, 시력이 나쁜 사람처럼 눈앞이 흐렸다. 조금 인상을 썼다. 집중해서 보려고. 천장의 무늬가 3개가 되었다, 하나가 되었다를 반복했다. 고개를 흔들었다. 또렷하게 보고 싶었다. 머리가 울렸다. 아, 멍청한 짓을 했네. 조금 더 눈을 감고 있기로 했다.


바닐라 스카이라는 영화가 있다. 스토리는 생략. 좋은 영화니까 꼭 보시기를. 극의 마지막에 화면이 새하얗게 변하고 눈이 피로를 느낄 때쯤, 하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Open your eyes. 얼마를 누워 있었을까. 내 옆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용민 씨.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네. 눈을 뜨실 시간이에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고개를 살짝 돌렸다. 분홍색 실루엣이 보였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일어나실 시간이에요. 실루엣이 말했다. 결과는 모바일로 전송될 예정이고요. 식권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시면 죽이 나오니까 드시고 귀가하시면 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진짜 일어날 시간이었다. 수면내시경을 끝으로, 건강검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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