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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Nov 05. 2022

조퇴

급한 일이 생겨 연차를 냈다. 아침 일찍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 반차만 사용해도 괜찮았지만, 그냥 하루 쉬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잠시 카페에 들렀다. 주문은 콜드브루. 요즘은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잠이 잘 안 오더라. 직원분이 번개처럼 제조해 주신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파리대왕을 꺼내서 잠시 읽다가,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침 8시에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거리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한적했다. 눈치 없이 일찍 떨어진 낙엽 몇 조각만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갑자기 열이 나 조퇴를 했던 적이 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겠다. 병원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나서는 순간 열이 가라앉아서 갈 필요가 없었다. 가방을 메고 친구들에게 집에 간다고 자랑을 했다. 부러워하는 시선을 뒤로하고 의기양양하게 교실을 나섰다. 모래로 덮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저 멀리서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교실문이 드르륵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문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 학교를 바라보았다. 1층, 2층, 3층. 1학년 2반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창문 너머로 친구들이 앉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빨리 집에나 가기로 했다.


매일 등교하던 거리를 지나 집으로 향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문구점 아주머니께선 가판대를 정리하고 계셨고, 고양이는 갓길에 주차된 자동차 밑에서 발을 핥고 있었고, 분식집 앞 오락기에서는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중요지 않을 수도 있다는걸. 사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걸. 등교, 공부, 성적, 뭐든지다.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져 피시방을 갈까 생각을 했다. 게임을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신기하게도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다면 할 것들을 잔뜩 생각해 둔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일을 학교를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와 지금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어른이 되어 이 이상한 기분이 어떤 건지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이것만 읽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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