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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은 교실을 지나 학교 건물로 향했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우리 초등학교는 학교라는 건물의 정의 그 자체였다. 커다란 기역자로 쌓아 올린 콘크리트 건물과, 그 바로 앞에 작게 조성된 정원. 여러 가지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될 때쯤 나타나는 캐노피와, 그늘 속에 숨어있는 5단짜리 스탠드. 그 사이로 구령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밑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진 커다란 철문도 보였다. 그 앞에는 몇몇 학생들과 체육 선생님이 보였다. 체육 시간이구나. 그들은 철문을 열고 그 안의 어둠으로 당당히 들어가더니, 잠시 후 축구공과 농구공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스탠드에서 수다를 떨던 학생들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합류했고, 다른 몇몇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고생들 하는구나. 나는 집에 가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괜히 으스대며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댔다. 나리의 옆모습이 보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리와 이렇게 둘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짝꿍이긴 하지만 장난을 많이 치는 사이도 아니었고, 쉬는 시간만 되면 나는 남자아이들과 숨바꼭질이든 술래잡기든 하러 나가버렸으니까.
‘왜 같이 가자고 한 거야….’
솔직한 심정이었다. 슬쩍 나리를 쳐다보았다. 나리는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둘은 계속 걸었다. 운동장을 지나고, 정문을 지났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문방구와 보육원을 지났다. 저기 분식집이 보였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코를 간지럽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멈춰 선 채 멍하니 어묵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누가 보았을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옆을 슬쩍 확인했다. 나리도 똑같이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아주머니가 휘적이고 있는 떡볶이에 꽂혀있었다. 국자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도 함께 왔다 갔다 했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나리는 깜짝 놀라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묵 먹을래?”
내가 물었다.
“나는 떡볶이 먹고 싶은데.”
나리가 대답했다.
“두 개 다 먹자.”
“그래, 그러자.”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용돈을 받았다. 일요일에 어머니께서 천 원을 주셨는데,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돈을 쓰지 않은 적도 있었고, 수요일만 지나도 돈을 다 써버릴 때도 있었다. 그 주는 운이 없게도 돈을 꽤 많이 써버렸다. 내 수중에 400원 정도만 남아있었는데, 다행히 나리가 천 원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어묵과 떡볶이를 함께 시킬 수 있었다. 나리에게 다음 주에 내 몫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나리는 갚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길가에서부터 보이는 분식 가판대와 세로로 크게 메뉴가 적인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의 안으로 들어서자, 그 시절 자주 쓰였던 비취색과 자주색의 조합으로 뭉쳐진 식탁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문이 열리며 초인종이 역할을 했고, 주인아주머니께서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환영의 인사를 외치셨다.
분식집은 여덟 평 정도 되어 보였다. 초등학생들의 몸집에 맞는 조그마한 식탁 6쌍이 오와 열을 맞춰 준비되어 있었고, 가게의 맞은편 끝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조리대가 이곳은 요리사의 공간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가게의 오른편에는 요일이 한문으로 적혀있는 커다란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위로는 먼지가 잔뜩 쌓인 선풍기가 보였다. 여름이 오면 주인아주머니께서 선풍기 청소를 하실까? 문득 궁금해졌다. 답을 알려면 한두 달은 더 있어야겠지.
분식집은 조용했다. 식탁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는 접시들은 이곳에 저학년생들의 파도가 한번 몰아쳤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강상태를 맞이한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다음번 공세를 대비해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계셨다. 우리는 깨끗이 치워진 몇 되지 않는 식탁을 찾아 앉았다.
떡볶이와 어묵을 시켰다. 아주머니께서는 조금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둘이 함께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금방 음식이 나왔다. 어묵은 양은 냄비에 국물과 함께 나왔고, 떡볶이는 비취색의 타원형 접시에 가득 담겨 나왔다. 어묵에는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물떡이 함께 나왔다. 어릴 적 분식집 메뉴 중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었다. 물떡은 가래떡을 꼬챙이에 꽂아 어묵탕에 넣은 음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특별한 것 없는 음식이었는데도, 나는 물떡을 참 좋아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서야 알게 되었는데, 물떡은 부산 경남 지방에만 있는 음식이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맛보지 못했다니…. 그 정도로 나는 물떡을 참 좋아했다.
“이거 먹을래?”
내 물음에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내가 계속 권유하자 나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하나를 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크다며, 반반 나눠 먹자고 말했다. 전부 양보할 생각이었던 나는 그래도 물떡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떡을 덜어 내 접시로 옮겼다. 꼬치를 빼고 아주머니께 받은 가위로 떡을 반으로 잘랐다. 크기가 반으로 줄었지만, 물떡은 여전히 맛있어 보였다. 접시에 국물을 조금 덜고 남은 떡을 옮겨 담았다. 심심해 보이지 않게 어묵 몇 개도 같이 덜어 넣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접시를 받은 나리는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어묵을 이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고, 내가 접시에서 어묵을 덜어 먹어도 괜찮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묵보다는 떡볶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웠다. 어묵 국물과 물떡의 조합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떡볶이 접시의 바닥 무늬가 보일 때쯤, 저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들렸다. 3학년 형, 누나들이 하교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선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뒤통수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가방을 둘러메며 나는 나리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나리는 괜찮다고 말을 받았다.
“같이 먹어 줘서 고마워. 나는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거든. 그런데 혼자 먹기엔 양이 늘 많았어. 친구들이랑 먹어도 늘 남기기 일쑤였어.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많이 먹질 못하거든.“
“그래? 다음에 떡볶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나는 잘 먹으니까.“
잘 먹는다는 말에 기분이 으쓱해진 나는 괜히 턱을 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내 표정을 보고 나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럴게.“
“근데 떡볶이를 좋아하면 물떡도 되게 좋아하겠다. 그치?“
내 물음에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물떡은 양념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어묵 먹을 때 물떡을 찾아 먹은 적이 한번도 없거든.”
“같이 가래떡으로 만든 음식인데도?”
믿기지 않는다는 내 표정을 보며 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싫어하는 건 아냐. 그냥 찾아서 먹지는 않는 정도? 근데,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 거야?”
“나는 정말 좋아하거든. 어묵 물에 푹 담근 가래떡이잖아. 엄청 맛있다고.”
“오늘 먹어보니 맛있긴 하더라.”
“그치?”
“다음번에도 같이 먹자.”
“응, 그러자.”
계속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두 갈래로 뻗은 골목에서 나리는 왼쪽 길을 선택했다. 문제는 우리 집은 오른쪽 길로 가야 했다는 점이다. 나리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헷갈릴 이유가 없는데도 굳이 왼쪽 길을 따라 걷는 나리에게 나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물었고, 나리는 그 답이 당산이라고 말해주었다.
“당산?”
내가 반문하자 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산.”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뒷산을 가리켜 우리는 당산이라고 불렀다.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 그대로 그곳은 신성한 산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몇 년 전 당산에서 유적이 발굴되었다. 원래도 당산에는 군데군데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는 구릉지가 있었는데, 그곳이 알고 보니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패총이었던 것이다. 패총이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무덤처럼 쌓여 있는 곳을 뜻하는 말인데, 그 말인즉슨 당산 주위에 매우 큰 촌락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와 내 친구들은 당산에서 바로 그 조개껍데기들을 서로에게 던지고 놀았었기 때문이다. 놀이터가 변변치 않았던 당시 우리 동네에서 당산은 어린아이들에게 놀이터의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뒷산이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임이 알려지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아저씨들이 당산을 찾아오더니, 산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의논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더 많은 아저씨들이 와서는, 기중기와 삽을 가지고 땅을 막 파기 시작했다. 등산로 주변에 천막이 세워지고 산의 곳곳에는 방책이 세워졌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놀이터를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