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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실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당산은 놀이터 그 이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쑥이 참 많이 자랐는데, 초봄이 되면 많은 아주머니께서 갓 자란 쑥을 캐러 당산에 오르곤 하셨다. 우리 어머니도 가끔 산에 들리셔서 쑥을 캐오곤 하셨는데, 그걸로 무침도 해 먹고 국도 해 먹곤 했다. 참 맛있었다. 하지만 발굴 작업이 시작된 후로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당산을 들락날락 한데다가, 몇몇 곳을 제외한 다른 곳은 출입이 제한되어 쑥을 캐기 쉽지 않은 환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후로는 어머니께서 시내 오일장에서 쑥을 직접 사 오셔서 요리해 주시곤 하셨는데, 오일장 표 쑥국 또한 맛이 꽤 괜찮았다. 하지만 당산을 자주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잔뜩 심술이 난 상태의 나는, 예전 쑥 요리가 더 맛있었다는 둥, 쑥이 맛이 없어졌다는 둥, 괜히 요리에 어깃장을 놓곤 했고, 그 덕분에 어머니로부터 많은 꾸중을 듣곤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괜히 당산에 놀러 가려는 친구들을 못 가게 한다거나, 시내를 갈 때도 당산을 질러 가면 훨씬 가까울 수 있는 길을 괜히 빙 돌아간다거나 하기도 했다.
나도 그때 했던 행동들이 매우 어리숙한 짓이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를 위해 변명을 해 보자면, 그 모든 것은 친구처럼 존재하던 공간을 빼앗겨 버린 꼬마 아이가 상실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발굴작업이 시작된 이후로 당산에 올라갔을 때, 나의 눈동자에 비친 풍경은 내가 알던 당산의 모습과는 매우 달라져 있었고,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마다 나는 마음속 한구석이 이유 없이 아려오는 기분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당산을 가본 지 꽤 오래되었다는 내 고백을 듣고는, 나리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의아해져, 예전에는 자주 갔었다는 사실도 말을 했다. 나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당산에 관해 몇 가지 말을 더 주고받은 후, 다시 걷기로 했다. 당산 길은 총 4개 정도가 있었다.
“우리 집 근처 길로 갈 거야.“
나리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리의 집과 OO 슈퍼를 지나쳤다. 주택가를 지나, 보육원과 중국집을 지났다. 노루표페인트와 갓 만들어진 새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인테리어 가게와 이름을 금빛으로 장식한 목욕탕 사이로 조그마한 샛길이 보였다. 이곳이 등산로의 시작점이었다.
당산은 산길마다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근처에서 시작되는 길은 등산로가 매우 완만하고 산책하기가 좋아서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자주 밤 산책을 하시곤 했다. 반면 쑥을 따러 가는 길은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길이 구불구불해서 사람들이 잘 왕래하지 않았다. 나리 집 근처의 등산로로 말하자면 초입에는 경사가 그렇게 심하지 않았으나, 갈수록 기울기가 커져서 가장 힘든 등산로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조개 패총과 가장 가까운 길이 바로, 이 등산로였다.
내 기억과는 달리 산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등산로의 초입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조금 가파른 곳에는 손잡이와 계단이 생겼다. 유적개발 사업과 함께 당산의 부대시설도 함께 정비하는 모양이었다. 유적지로 지정된 공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근처에는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나와 나리는 잠시 멈춰서 글을 읽었다.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의 발굴이 이루어진 유적인 OO 패총은….’
초등학생이 읽기엔 글이 참 길고 어려웠다. 우리는 안내문 해독을 포기하고 계속 걷기로 했다.
우리는 등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친구들이랑 무엇을 하는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불량식품은 어떤 것인지, 그때는 왜 그랬는지. 신기하게도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그때는 그래서 그랬어. 그때는 그래서 그렇게 말했어. 담담하게 말하고, 상대도 고개 끄덕인 후 자신의 기분을 말하고,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늘 투닥거리기만 했던 두 명이 새로운 환경과 함께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교류하게 만드는 것. 환경이라는 건 참 중요한 요소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등산을 가는 건가.
“오락실 이야기 해줘.”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어쩌다 보니 동네 오락실이 이야깃거리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리는 유독 오락실에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우리 또래들 사이에서는 오락실에서 있었던 조그마한 사건이 매우 큰 화두였거든. 그 중심에는 내가 있기도 했고.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사건을 직접 목도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거지.
오락실이라, 나는 이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었다. 모름지기 사내라면 이야기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는 거거든. 그런 마음가짐으로 말이야. 하지만 지금이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나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가빠진 숨소리가 나를 설득했다. 그래 까짓것.
그 사건이라는 건 동네 오락실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뜻했다. 우리 동네에는 큰 오락실이 두 곳 있었다. 하나는 오락실이고, 다른 하나는 오락실이었다. 오락실은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게임인 철권 4와 태그의 기계를 여러 대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고, 반면 오락실은 DDR과 PUMP 기계를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신기하게도 오락실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도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PUMP를 매우 좋아하나 보다 하고 말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오락실에는 검은 벨벳 커튼으로 분리된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는데, 어른들에겐 그곳이 매우 인기가 많았다.
이 점을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이른 아침에, 벨벳 커튼 앞 부스에서 주인아저씨가 잠에 취해 계실 때, 친구들과 함께 커튼 너머를 훔쳐보았거든. 아직도 기억난다. 나체 2D 여성을 가린 블록 뭉치를 없애려 열심히 애쓰던 아저씨와, 잔뜩 구겨진 미간을 쓰다듬으며 파친코 봉을 계속 당기시던 아저씨, 그리고 그들 옆에 놓인,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우리의 조그마한 모험은 아무런 고통 없이 마무리되지는 못했다. 생전 처음 느낀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도 잠시, 우리는 파친코 아저씨의 성난 목소리에 정신들 차렸다. 해산! 우리 중 누군가가 외쳤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소란에 주인아저씨도 잠에서 깨어나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퇴로를 차단당한 채, 모두 붙잡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 번만 더 걸리면 너희 부모들한테 데리고 갈 거다, 이놈들아!”
귓속에서 아저씨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이후로 나는 OO 오락실에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예 발길을 끊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인 삼국 전기와 메탈슬러그 3가 그 오락실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살금살금 다시 오락실에 숨어들어 게임을 하곤 했다. 아저씨께서도 처음에는 나를 보고 눈을 부라리시더니, 얌전히 게임만 하고 돌아가는 걸 몇 번 보신 뒤로는 내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문제는 사건 이후 어린이들 사이에서 OO 오락실에 관해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 모두 장막 너머에서 목격한 것들에 대해 궁금해했고, 나를 포함한 우리 척후병들은 현장 목격자로서 꽤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의 목격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이 의례 그렇듯, 퍼질수록 살이 계속 붙더니, 나중에는 그곳이 사실 조직폭력배들의 집합 장소였다든지, 아니면 간첩들의 아지트였다는 둥, 별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이게 맞다 느니, 저게 맞다 느니, 모두가 오락실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관해 토론까지 하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보다는 주인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가 궁금했다. 아저씨는 어느 순간부터 본인의 영업장에서 꼬마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자면, 손님들이 줄어든 것에 기분이 좋지 않으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신경 쓰이는 꼬마들이 사라져서 속이 시원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답은 아저씨께서만 아시겠지.
내 이야기를 들은 나리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랬다.
“그런 곳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어. 나도 가끔 들리곤 했던 오락실이었는데. 너무 무서워.”
“앞으로는 그 커튼 근처는 절대로 가지 마.”
“그 오락실을 안 갈 거야.“
“그것도 방법이네.”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거길 엿볼 생각을 다 하고.”
“그래도 덕분에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됐잖아.”
내 으스대는 말투에 나리는 눈을 흘기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참 문제가 많은 아이야.”
“아니거든. 모험심이 강한 것뿐이거든.”
“그게 그거야.”
“그런 거 같기도 해.”
조잘대며 산을 오르니,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산의 중턱에 도착했다. 그곳은 엉망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접근금지 표시가 보였고, 그 안에는 안전모를 쓴 아저씨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푸른 빛이 무성하던 그곳은 온통 흙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땅은 여기저기 사각 모양으로 파헤쳐져 있었고, 그곳에 원래 자리 잡고 있던 흙은 다른 곳에서 조그만 언덕이 되어 있었다. 기분이 안 좋아졌다.
“어서 지나가자.”
나리가 속삭였다. 나는 나리의 손짓에 이끌려 그곳을 지나쳤다.
괜찮아?”
나리가 물었다. 아마 저기압이 되어버린 내 상태를 눈치챈 것 같았다.
“응, 괜찮아.”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리는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정상에 도착하면 괜찮을 거야. 거기는 그대로거든.”
“응.”
내가 대답했다. 살짝 기분이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