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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진 Dec 16. 2021

이름을 잊어 잔상으로만 남은 그대들에게

전해지지 못할 감사

단점이 수두룩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을 뽑으라면 이름을 잘 못 외우고, 잘 까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주가는 식당의 이름을 까먹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의 이름까지 종종 까먹으니 퍽 난감하다.


가까웠던 사람도 몇년 연락하지 않으면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가까웠음에도. 보통 이름은 기억하는데. 그러니 안 본지 20년 가까이 되는 부친의 이름은 당연히 바로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태어나기를 배은망덕한 놈으로 태어난 것인지 뭔지.


가끔 사무치게 어렸을 적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모르겠을 때가 가장 가슴이 먹먹하다. 그들을 찾고 싶어도 이름을 알아야 찾는데 전혀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니. 몇달 전 한 사람을 찾고 싶어 애를 썼지만 가장 중한 이름을 모르니 일이 진행이 되지 않았더랬다.


내가 찾고 싶은 그들은 가장 여렸지만 가장 힘들었던, 열살 이쪽 저쪽이던 그 때 따뜻했던 사람들이다. 작디 작은 내 인생에 정말 몇 없는 좋은 사람들이었던 그들.


어느 가을 날, 바람이나 쐬라고 밤 주우러 가자고 하셨는데 비가 왔더랬다. 어린 것이 가시만 돋혔던 내가 비 맞으려 여기 온게 아니라며 버릇없게 말했지만 웃으시며 말로써 '안아주신' 어느 집사님이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났다. 당시 교회 모두가 기집애 같다고 무시하고, 신경질만 많다고 윽박질러 대고, 따돌림도 방관하던 어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거친 말이 아닌 웃음으로 마음 녹이신 유일한 분이셨다. 하도 오래되어서 정확히 몇살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난하고 아무것도 특출난게 없는데 말까지 워낙 날카롭던 내게 먼저  내밀어주고  보살펴줬던  친구가 잔상에 스친다. 머리가 원래부터 타고 나길 밝은 갈색에 얼굴이 희고 주근깨가 몇개 있던  생겼던 반장 친구. 가난에 흠뻑 젖은 나는  친구 집에서 생전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을 만져봤던 기억이 난다.


이사가고 전학간 후 그 반장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비가 오는데 우산은 없어서 그냥 터벅 터벅 고개 숙여 걸어가는 길에 어느 순간부터 젖지 않아 이상해서 뒤돌아 보니 그 친구가 말 없이 우산을 씌워줬더랬다. 이렇게 참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4번째 전학간 학교가 가장 짧은 기간 다닌 학교다. 6학년이었을듯 싶다. 3개월 남짓 다녔다. 잦은 전학에 당연 적응을 잘 못하고 있을 때, 전학가기 전날 오후까지 공을 지지리도 못차는 나를 눈 감아주며 골까지 넣도록 해준 쌍둥이 친구들.  그 저녁과 운동장이 가끔 기억이 난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들 사이에 그저 따뜻함만 남은, 얼굴도 그들과 있던 어떤 일도 남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감히 하지 못할 고민과 어찌할 수 없는 환경 그리고 항상 친구에 목말랐지만 다가갈 수도 없던 마음을 이해하진 못했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에게 손을 내민 위로의 사람들이 그들이다.


내게 먼저 손 내밀어준 그 사람들이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다섯 곳을 거쳤기에 졸업앨범도 뒤질 수 없고 모친의 기억에서도 없기에 찾을 길이 없다. 참 인생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들이 내가 불쌍해서 적선한 것이라도 나는 그것이 고마울 밖에. 신께서 그 숨 막히는 상황에 숨통이라도 좀 틔우라고 허락하신 숨구멍이라 생각한다. 그 고마운 이들의 이름도 기억 못하는 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거운 죄책감이 있다. 나이가 먹어갈 수록 기억이 희미해질 생각에 더 그것들이 무겁게 느껴진다.


배은망덕하게 감히 이름을 잊어 잔상으로만 남은 그대들에게 마음으로나마 깊은 감사를 표한다. 어쩌면 그대들 덕에 죽지 않고 살았나보다. 감사의 시즌인 연말. 그대들이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나의 감사가 마음 가운데 전달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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