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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진 Nov 25. 2022

가스라이팅, 그깟거 실컷 당해주라

가스라이터들을 위한 우아한 복수

가스라이팅인 것 알았지만 부비고 살며 실컷 당해준 것은 어쩌던지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한 바운더리에 묶여 있고 내가 '모시는' 이였기에. 결국 그의 지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으며, 또한 내가 어찌 수를 써봤자 소용 없는 심히 망가진 사람이었기 때문. 그에게 내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이별 아닐까.


가만 보니 내가 떠나고 나서도 별 달라지는 것 없어 뵌다. 사실 내적으로는 엄청난 찔림이 있지만 그냥 자기 사는대로 살겠다고 작정한 것이겠지.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 그렇게 많지도 않는 이가 어찌 저리 구제불능일까 싶다만. 그래도 마지막 대화서 나에게 들킨 그 표정으로 나는 만족한다. 숨긴다고 숨긴 그 의도 다 까발렸으니. 그럼에도 별 바뀌지 않으니 결국 심판은 하늘서 하셔야.


고차원적인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이들


이런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일만 잘 해결되면 된다는 것. 과정은 별 중요하지 않다. 주변도 별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기 때문. 그걸 평생 우려먹기에. 그 일이 중요한 일은 맞기에 사람들은 추앙한다. 자신의 노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내가 노력해서 이리 성공했다는 식. 실상 주변의 도움없음 속 빈 강정이었을 터인데.


그들도 이를 알긴 아니 옆에서 도운 자들에게 적당히 댓가 쥐어주고 자신의 죄책감 내지는 갖고 있기는 부담스러운 고마움을 이만하면 됐지 하며 퉁쳐버린다. 대부분 이런 이들은 죄책감이나 고마움 같은 고차원적인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퉁쳐버리거나 그런 감정이 들게 하는 대상에 대해 고차원의 합리화를 거친다. 내가 중하니 그들의 호의와 배려는 당연하지, 그러니 그들에게 나의 말은 도움이 되지, 그러니 나는 도움을 주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식. 자기 자신도 가스라이팅 하는 불쌍한 이들. 한 예가 있다면 이렇다는 것.


차라리 실컷 당해주라


나는 철칙 아닌 철칙을 몇 갖고 있는데,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못 깨달을 바에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는 것. 미울 때일 수록 더 그를 위해 봉사해주며 나의 포션을 실컷 넓힌 후 떠난다는 것. 내가 아니면 안되게끔 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떠난다는 것. 좀 곤란해져봐야. 사람 귀한 줄 알아야.


차라리 실컷 가스라이팅 당해주고 떠나는 것이 우아한 복수다. 그렇게 당해주면서 자신의 실력을 쌓고 위기대처능력을 실컷 높이면 그 경험이 내 삶에 반드시 도움 된다. 대신 가스라이팅인 것을 인지는 하고 있어야. 말에 능숙한 '가스라이터'들에 속지말고 그 말들의 의중을 계속 간파해야 한다. 어떤 것은 질투와 시기심에 기인하고 어떤 것은 분노에 기인하며 어떤 것은 자기애에 기인한다. 가스라이터들 대부분 나르시스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 더 얹어 말하자면, 그들이 주는 '선물'에 대해 너무 마음쓰지 말라는 것. 빚지는 것 싫어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부여하기에 준 것에 대해 고마워 쉬이 용납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더랬다. (이해와 용납은 다르고, 용납과 용서는 다르다.) 괜한 고마움으로 곤란한 그들의 선물을 선물로 받아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 여긴다. 적당한 기념일에 큰 선물 하나 줘버리는 것. 그러면 함부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자신들이 선물 준 것으로 어찌 휘잡아 보고자 한 의도가 무너지기에.


나와 그들을 위해


나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는 식의 요즘 트렌디한 위로를 건내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성숙함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만 들여다보게 하는 이기심에 젖은 세태 별 맘에 들지 않다. 그러나 굳이 우아한 복수의 방법을 논하는 것은 같이 부비고 살려면 가스라이터들도 한번쯤은 정신차릴 때가 필요하기 때문. 물론 불치 수준의 가스라이터들은 앞뒤 재지 말고 떠나는 것이 상책이지만 일말의 여지가 있는 가스라이터들에게는 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왕 당한 김에 한 인생 구제에 좀 도움 되면 좋지 않나.


가스라이터들에게 당한 시간 이미 되돌릴 수 없다. 그 시간이 아까워 가슴 절절매는 것 이제 그만하고 어찌 잘 살 방도를 찾는게 이롭다. 그 피같은 시간들을 경험으로 인지하고 그 경험을 사는데 도움 되도록 잘 다듬어야 한다. 후회만 하고 앉았기에는 세상 만만찮고 시간은 아깝고 삶은 짧다.


나의 존엄성(dignity)을 지키고 가스라이터의 존엄성도 회복시켜주는 도무지 감당 못할 무시무시한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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