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면진 Jan 12. 2023

병도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걸려야

진정한 쉼과 그로 인한 행복은 한 천 년쯤 후를 기약하기로

나는 희귀난치병 환자다. 희귀난치라고 하면 다들 지레 겁을 먹는데 다행스레(?) 죽을 병은 아니다. 병을 모르고 살다가 재작년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동네서 검사를 해보니 당신 희귀병 소견이 뵈니 검사결과 넣은 CD 들고 큰 병원 가라고 했더랬다. 그래서 어담쩔에 한두 달에 한 번씩 대한민국서 제일 크고 복잡한 병원다니며 사는 희귀난치병 환자가 되어버린 것. 완장 하나 달았달까.


첫 진료에 의사께서 검사결과와 문진한 것을 보니 당신은 병 가진지 오래 됐다 하셨다. 맞는 것 같았다. 원래 탈이 잘 난다고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 병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니 연구중이지만 병에 걸리는 정확한 원인 모른다, 상태가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한다, 원인 모르니 완벽한 치료제가 없다, 평생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 상태 심해지면 절제술도 받아야 된다,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등등의 골치 아픈 내용 뿐. 죽을 병이면 그냥 죽고 마는데 이렇게 사람 귀찮게 하는 병이라니. 일상생활은 나름 할 수 있어서 아픈 티도 잘 못내고. 그렇다고 안 아픈 것은 아니고. 삶의 질은 남들보다 월등히 떨어지는데 별 티가 안 난다니. 이렇게 인건비 안나오는 병이 어딨나. 걸려도 하필 이런 걸.


병원 진료 초기에는 워낙 검사가 많았고 겁을 먹게될 수 밖에 없어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랬다. 어느 유명한 사이트에 이 인건비 안 나오는 병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있어 들어가봤더니 어느 누구는 너무 좋지 않아서 회사를 2년새 세 번을 그만 뒀다, 약을 뭐 쓰는 중이다, 운동하고 살라고 인증샷 올리는 사람도 있고 나름 활발했더랬다. 나는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하는 순간 뭔가 내가 진실로 병자가 되는 느낌이었달까. 그것만 하루 종일 보면서 약이 새로운 게 떴네 마네 이런 걸 보고 있을 것 같아서.


내가 가진 병은 자가 주사는 떼놓을 수 없는 운명이다. 처음에 맞던 주사는 일주일에 한 번 텀이었는데 맞고 나면 구역질이 나고 몸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맞는 요일이 되면 주사기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었다. 얼마나 독했던지 냄새에까지 예민해지고 맞고 나면 입에서 약 냄새가 날 정도. 투약 1년 후 정기 검진을 해보니 그 주사로는 전혀 차도가 없자 먹는 약으로 바꾸고 새로운 주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것은 다행히 차도가 있다. 물론 또 정기검진으로 제대로 들여다봐야 알겠지만.


새로 추가된 주사는 2주마다 한 번인데 맞는 날이면 항상 까먹어서 침대에 잘 준비를 다 하고 나서야 생각나 급히 약을 꺼내서 주사를 놓기 일수. 어찌 혼자 넣느냐는데 피스톤식이 아니라 펜처럼 생겨서 누르면 들어가는 식. 여하튼 달력에 표시를 해두지만 아무래도 2주에 한 번이니 까먹게 되는. 이럴 때마다 나같은 사람이 중병 걸리니 참 곤란하다는 생각.


완치라는 개념이 거의 없어 장기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현상유지를 해야하니 투약이 절대적인데 나는 그것마저도 잘 까먹고 귀찮아 하는 사람이니 이건 참 난감하달까. 까먹는다는 것은 생각을 심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일텐데 병의 중함을 따져볼 땐 참 나도 답이 없다는 생각. 이런 나의 게으름을 고치라고 이 병을 주셨나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어김없이 오늘도 까먹고 침대에 누웠다가 번쩍 일어나 급히 냉장고에서 주사 꺼내서 쑤셨다. 너무 피곤한데 찌른 곳 아프니 잠이 깨버려 난감한 상황. 분명 저녁 먹을 때까진 생각했었는데.


똑똑하고 바지런한 게 성공(?)에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병 걸린 상황에도 유리하다는 것은 참 사람 쪼그라들게 만든다. 남들이 나더러 똑똑하고 바지런하다고 말하지만 그런 척 하려 죽기 살기로 애쓰는 것이고 실상은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진정으로 난치는 멍청함과 게으름 아닐까. 그래도 안 그런 척 기를 쓰고 애를 쓰며 사니 남들이 칭찬은 하더라만. 너무 인생이 피곤한 와중.


희한한 혹을 달고 평생을 살려니 막막해서 이따끔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죽지 못하니 살아야지. 혹 못 뗀다니 붙이고 살아야지 어째. 밖에서 똑똑하고 바지런한 척하던 것, 안에서도 해야지. 좀 늘어질 여지를 주지 않는 인생.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동안은 온전한 쉼이 없다는 말이 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온전한 쉼과 그로 인한 행복은 한 천 년 후쯤을 기약하는 것이 맘 편할 듯.


이처럼 인생이란 건 곤란함과 피곤함의 연속.


작가의 이전글 일상이 우리게 보낸 예술로의 초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