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사이 May 16. 2023

'흐르는 것들의 역사'를 읽고

유체역학의 철학

흐르는 것들의 역사(송현수 지음)


과학 이론을 역사 속 사례와 버무려, 알차면서도 지나치지 않게, 마치 상식이 풍부해지는 느낌을 주는 과학 서적이다.

확실히 과학 관련 서적은 가독성이 좋다. 내 이공계 기질과 타성 탓인지, 아니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필력 탓인지 모르지만, 중고등학생에게 과학의 재미를 불어넣기에도 충분할 정도다.


흐르는 것들은 주위에 많다. 물, 기름과 같은 액체나 기체가 대표적일 테고, ‘시간’이란 개념도 흐른다고 표현한다. 흐르는 것은 운동성을 내포하므로, 방향이 있다. 대부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옮겨간다. 저절로 흐를 수도 있고, 외부의 힘에 의해 역행할 수도 있다. 흐르는 것 자체 또는 흐르는 것 속에 있는 사물의 움직임을 조작하려면,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그리고, 왜.

흐르는 것(유체)의 움직임에 관련된 요소간 관계를 정의하는 것, 그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원인 또는 그 움직임에서 비롯된 결과로서의 힘 또는 에너지를 알아보는 것, 이것이 유체역학일 테다.


『흐르는 것들의 역사』는 총 9가지의 역사적 사건을 시기 순으로 다룬다. 로마 제국의 수로, 라이트 형제의 비행, 타이타닉의 침몰 등 유체와 관련되어 해석해 볼 수 있는 굵직한 사건들로, 당시 사건의 내막을 과학 이론과 함께 소소한 상식으로 풀어낸다. 개괄하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분절된 9가지 사건 안에서, 사건과 현상을 과학 공식으로 풀되 그 사건의 결과를 고찰해 보는 식이다. 다만, 저자는 “역사는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인간 정신의 최초 산물이다 -토마스 칼라일”(p8)로 시작하여,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널드 토인비”(p219)로 마무리한다. 결론적으로 수미에 드러낸 역사관을 염두에 두고 가볍게, 물 흐르듯 읽으면 된다.


사이펀 원리가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학계 소식부터, 네덜란드의 어원이 ‘낮은 땅’이며,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등의 도시명은 침수방지를 위한 Dam을 어미로 한다는 것, 빙산의 일각은 전체 빙산 중 22%란 것,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물수제비 뜨기에는 둥글고 납작한 지름 5cm의 돌로 수면과 20도의 각도로 냅다 던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상식도 즐길 수 있는 한편, 뜬금없이 1898년의 미국 소설<The Wreck of the Titan>이 타이타닉 침몰을 예견한 것이라는 소문을 소개하며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잠깐 옆길로 새면, 1981년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이 2019년 말의 코로나를 예견했다거나, 1999년  타츠키 료의 <私が見た未来>가 동일본대지진을 예견했다는 소문을 상기시켜 더욱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물론, 과학과는 무관하지만.


가볍게 읽었지만, 내게는 순전히 개인적으로 두 가지 여운이 남아 있다.

첫째는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이 있다면, 안 되는 것이 없다’라는 희망.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폭탄은 맨해튼 계획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계획에는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 리처드 파인만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여했으며, 무려 2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 주도로, 영국, 캐나다가 참여하였고, 극비리에 진행된 이 계획에 쏟아 부운 예산은 당시 20억 달러. 그 결과, 단 2년 만에 원자 폭탄 ‘리틀 보이’를 만든다. 한편,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아폴로 계획은 미국 GDP의 0.75%, 당시 한국 GDP의 150%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8년 만에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발을 딛는다. 물론, 아폴로 계획은 소련 견제의 명분이었기에 그 후 NASA는 토사구팽의 처지가 되지만, 다행히도 현재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통해 미국을 넘어, 전지구적 프로젝트로 확대되어 진행되고 있다. 머지않아, 달을 전초기지로 한 우주 탐험의 시대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실은 최근 ipcc의 경고 ‘기후위기 골든타임 10년, 이후 선택지는 없다’는 지구적 과제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우주 탐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지구가 먼저 끝날 판이므로 그들의 우선순위를 재고시킬 필요가 있다. 국제적 관심과 지원으로 과학자들을 기후위기에 집중시킨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기대한다.

물론, ‘모든’ 인간은 생존이든 유전자 존속이든 그 영속성을 위한 순수한 목적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전제하겠지만.


둘째는, ‘흘러가는 인생의 공식을 세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

‘인생’은 종합적이고 모호한 최상위 개념이므로, 극단적으로, 그중 흘러가는 것을 ‘미래로 향하는 나의 시간’만으로 본다면, ‘거리’ 나누기 ‘속도’과 같이 ‘신체 수명’ 나누기 ‘삶의 호흡’으로 볼 수 있을까. 건강 관리로 ‘신체 수명’을 늘리거나, 머뭇거림, 사색으로 ‘삶의 호흡’을 늦춤(줄임)으로써 ‘나의 시간’이 늘어나면, 인생의 그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그 가능성이란 행복일 수도, 생존이나 유전자 남김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의 시간’은 ‘인생’과 비례하는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관계’를 곱하고, 인생을 정의하는 미지의 무언가를 보정해 줄 ‘무차원수’ 하나 만들어서 곱하면, 그럴듯한 ‘인생’ 공식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 ‘무차원수’에 대한 탐구를 위해, 끊임없이 독서를 하고 선각자를 찾아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궤변일까. 비웃어도, 변명거리는 없다.


아무튼, 이 책 『흐르는 것들의 역사』는 대학시절 온갖 수학식으로 괴롭혔던 ‘유체역학’을 친근하게 만들어줌과 동시에, 철학, 인문학과 같은 익숙하지 않은 무게의 독서 와중에, 적절한 ‘애피타이저’로서 손색없다.

작가의 이전글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