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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May 16. 2023

'인간 없는 세상'을 읽고

기후위기는 아이들의 미래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중 옮김)

기후위기 뉴스를 보던 아이가 말한다.

“나 너무 늦게 태어난 거 아니야?‘”

인간이 없어지면 지구(자연)는 긴 시간에 걸쳐 치유되고 원복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겠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정녕 불가능한가. 이 책을 보면, 공존의 길은 요원하다. 인간종의 진화론적 탄생으로부터 이주 및 영역 확장은 주변의 순진했던 동식물을 정벌하며 수많은 선대의 생태계를 말살시켰고, 오직 인간만의 편의를 위해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파괴를 일삼았다. 여기에, 인간은 신을 닮은 존재이고, 자연을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거나 이용 대상이라는 믿음으로 합리화했다. 그런데, 무책임한 착취를 자행해 온, 이 오만하고도 무지한 인류는 이제야 비로소 어안이 벙벙해진다.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홍수와 태풍, 산사태, 폭염, 혹한 등 ‘기후위기’의 징표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구에게 ’가장 교활한 생태계 교란종‘, ‘암세포’ 일지 모르는 인류는 이제 절멸, 대수술을 앞두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심정은 한마디로 ’ 착잡하다 ‘. 제초제, 플라스틱, 핵발전이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위협적인 것은 알겠다. 인류의 소멸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리셋되기 전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기후위기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구 온난화는 툰드라 지하의 얼음을 녹여 메탄가스를 분출시켜 더욱 가속할 것이다. 프레온가스는 아직 효과적인 대체제를 찾지 못했고, 핵연료봉은 오로지 지하에 매립시킬 뿐이고, 더 많은 석탄채굴을 위해 나무를 벌채할 시간조차 없이 불도저로 밀어버린다. 누가 대안,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 저자의 소개(p460)처럼, 극단적으로 모든 가임여성이 한 명의 아이만 출산하도록 제한해서 이번 세기말의 인구를 16억으로 줄여야 할까.

저자는 다양한 지역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인간에 의해 사라진 동식물들과 함께, 휴전 지역의 생태계 복원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바람직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음에도, 인간의 욕구는 역사마저 취사선택을 하고 있다. 자연에 어우러진 마야문명이, 부와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멸망했음은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몇몇 종교에서 말하듯, 종말 후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순환’의 우주 역사를 보이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단지 우리의 목숨이 소중하기에 두려운 것일 뿐이며, 조금 더 고명하게는 아이들의 미래를 들먹이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 순환 과정의 필연적 미생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조금은 지능적인 미생물.

그 어떤 뉴스라도 체감하지 못하면 무감각해지듯 스쳐 지났지만, 청명한 하늘이 오히려 어색해지고 벚꽃이 일주일 빨리 만개한 올해, 이제는 내 눈앞에 일어나는 뉴스임을 부인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어느 순간 물을 사 먹기 시작했고, 황사와 미세먼지가 전국을 덮치고 있다. 사계절의 경계는 희미해져 가고, 아카시아꽃은 꿀벌이 잠에서 깨기 전에 먼저 피었다 져버리고, 비와 눈의 양은 극단적으로 많거나 적어져 문제가 된다.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에코백 챙기고, 내 컵 사용하고, 잔반 남기지 않는 것 밖에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효과적일지 의심스럽다. 쇼핑백도 컵도 생산 과정상의 부산물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의 환경 구호 활동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다. 혹시 기업, 국가의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치부하여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비열한 전략일지라도 적어도, 우리들의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창 밖에 철마다 더 상쾌해진 공기에, 더 많은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감미로운 향기가 가득한 곳’을 꿈꾸며 네가 곧 세상의 희망임을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다만, 지구와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작년 121개국 갤럽조사에서는 오히려 기후변화에 대한 개인들의 위기의식은 줄어들었다(22.10.19 연합뉴스)고 한다. 더욱이, 개인 활동은 지구의 빠른 ‘기후 위기’ 진행에 비하면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자포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규모적 효과를 위해 기업과 국가에의 호소가 더 절실하다. 따라서, 개인 활동의 범위에 현명한 소비와 투표를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

“21세기 인류에게 계시록으로 남을 책” 뉴스위크의 이 한 줄 서평이 더없이 적절한 책, 『인간 없는 세상』

이 책을 읽은 후, 무심코 지나던 보도블록 사이의 민들레 꽃에도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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