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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Aug 29. 2023

난 조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리’를 읽고

“인간은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라는 진화인류학자의 말은 낯설지 않다. 『종의 기원』으로, 자연선택의 불가항력 속에 인간 역시 하나의 종일 뿐임을 알고 있는 탓이다.

몇몇 유기체에서 시작된 무수한 생물종의 진화, 분화 속에 우리 ‘호모 사피엔스’ 역시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다만,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혁명, 농업혁명을 거쳐, 과학혁명에 이르며 개체수 100억의 성과를 눈앞에 둘 정도로 기세등등하다.


저자는 삶의 곳곳에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행동생태학의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해 온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생존과 번식을 향한 적응적 형질을 발전시켜 왔다. 새가 날개를 갖고,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갖고 있듯, 인간 역시 자신의 유기체적 틀과 한계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최적화해 왔고 그것이 바로 지적 능력, 이성이다.


모든 행동과 판단에는 이유가 있다.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세 가지 키워드로 딱 잘라 말하는 듯하다. 생존, 번식, 그리고 양육.


끌리는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꾸미고, 아이 낳기를 고민하고,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고 싶고, 코로나 팬데믹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웃을 피하고, 뷔페에서 고사리나물을 고르고, 당장 쓰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저축과 투자를 하는 등, 견련 없어 보이는 인생의 사건들을 위 세 가지에 수렴시킨다.


‘행동생태학자는 동물의 행동이 다양한 생태적 조건에서 생존과 번식을 최적화하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간주한다’ p21

동물의 경우, 정신의 상태나 마음을 알 수 없으므로 외적 행동만이 연구 대상이다. 이러한 동물행동생태학은 인간행동생태학으로 확장되었고, 마찬가지로 인간 심리의 내적 과정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인간의 복잡한 사회 체계는 생태적 적응의 결과’로, 단지 그럴만한 선택압에 의한 것일 뿐, 우월하기 때문에 아니다. p24


인간으로 태어나 하나의 개체로서 ‘굶주림 없이 오래 살며, 아이를 낳고 키워내는’ 삶으로 대원칙을 정리할 수 있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농업부터 의학, 과학의 발전, 그리고 복지 등이 구현된다. 역사에 따라 집단 또는 사회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생존, 번식, 양육에 대한 각각의 관심도나 자원할당 비율만 달라질 뿐, 대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로 간주된 인간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위로한다.

‘인간의 행동은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생태학적 환경은 복수의 적응적 행동 패턴을 낳았고 이는 다시 모자이크식 사회생태학적 조건을 창조했다’ p29

즉,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로부터 다소 독립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이 다른 동물종의 그것과도 다를까?

저자는 대표적으로 ‘조류’와 비교하며 인간종을 객관화하고 나아가, 인간 중심적 사고, 의인화의 ‘아름다운 편견’을 깨부수고 “(자연 속 한 개체의 동물일 뿐인) 너 자신을 알라”는 행동생태학적 일침을 날린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모든 종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자연선택이 인간종에게 또 다른 ‘미래’의 기회를 줄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자리』는 ‘정신의 업로드’, ‘탈육체화’까지 대두되는 오늘날, 행동생태학을 통해 나와 우리 행동의 이유를 되짚어보며, 유전자의 통제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가능성이 있을지 잠시나마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된다.


많은 이들이 진화의 관점으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류의 거시적 변화를 훑어보고 있다. 정신에 대해서는 뇌과학이 매진한다. 정신과 육체의 연결 당위성은 아직 모르겠다. 육체는?

『New Philosopher vol.21』(?)에서 본 삽화가 기억난다. 단두대에서 잘린 철학자의 머리가 말한다. “머리가 잘린 것이 아니오. 몸이 잘려나간 것이란 말이오”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육체의 외적 표출인 ‘행동’을 고찰하며, 인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배운다.


‘당신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연 답할 수 있는가?

인간 고유의 형질인 지적 능력조차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사라진다고 한다. 인간이 고유하다고 믿는다면, 또는 우리의 멸종이 두렵다면, 적어도 ‘지적 능력’을 개체로서의 의미, 존재 가치를 찾는데 활용해 보면 어떨까.

“난 조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고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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