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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Aug 29. 2023

오펜하이머, 물리학 300년 역사의 정점을 찍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흥행 중이다.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단순히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더욱 흥미롭겠다는 생각에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펼쳐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지를 받아 들고 골치 앓는 꼴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는 20세기초 어린 시절부터 1967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개인문서 및 FBI도청기록, 그리고 친구, 친척, 동료의 기억들을 모아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의 삶을 묘사한다. 줄거리는 다음의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듯이,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핵이라는 불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통제하고, 위험성을 경고하려고 했을 때, 권력자들은 제우스처럼 분노에 차서 그에게 벌을 내렸다’ p17


이 책은 빨리 넘길 수가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표현, 나아가 업적은 즉흥적일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따라서, 그의 길에 마주친 수많은 인물들의 이력이 충분히 할애되어 독자로 하여금 알아두도록 강요한다. 독자에게 ‘오펜하이머’란 존재의 윤곽이 잡힐 때쯤, 그에게 두 가지 시험을 던진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그리고 비밀취급인가를 둘러싼(그러나, 저의는 수소폭탄, 나아가 핵확산전략을 막으려는 오펜하이머를 퇴출하고자 한, 또는 스트로스의 야망에 대한 강력한 훼방꾼을 제거하기 위한) 보안 청문회다. 오펜하이머는 일관되지 않은 답변을 제시하였기에, 시험이 시련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오펜하이머가 회자되는 것은 그의 변화와 답변이 결국 옳았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무거운 책임감과 압박 속에 단지 ‘우울증’에 빠졌다고 표현된, 오펜하이머의 심경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환경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사랑, 우정, 야망, 그리고 권력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오펜하이머가 되어 본다.


20세기초 물리학은 순식간에 고치를 넘어 나비가 되어 비상하는 듯하다.

고전역학에서 상대성 이론으로, 또한 양자 역학의 태동부터 핵분열 폭탄까지. 불과 5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벌어진 변화는 ‘과학혁명’의 속도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과학이 ‘용도’를 만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구세주인가? 악마인가?


히틀러의 나치가 유럽을 넘어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는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뛰어난 과학자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막을 것인가?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보여줄 것인가? 판단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한가?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 다행인가? 폭탄의 위력은 매력적인가? 군인, 정치인은 더 강한 것을 원한다. 다시, 막을 것인가? 과거에는 막았는데 이번에는 안된다고 설득할 수 있는가?

나치스와 파시즘을 물리치려던 오펜하이머, 모든 과학 정보를 공유하는 ‘열린 세계’를 역설한 보어, 고민 끝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라비, 그리고 수소폭탄에 천착한 텔러.

나는 누가 될 것인가?


오펜하이머는 과연, 모리슨의 말처럼 프로메테우스를 넘어 진정으로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을까?

나치스를 막으려던 프로메테우스.

이미 패배한 적에게 ‘불’을 사용한 인간들. ‘불’의 환영에 광기를 보이기 시작한 인간들.

인류의 파멸, 아마겟돈을 막으려는 프로메테우스.

불을 넘어 태양을 훔치려는 인간들은 원자폭탄을 넘어선 수소폭탄으로 날아든다.

그들이 추앙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절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벌이 아닌, 인간들로부터 벌을 받는다.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애초에 ‘불’을 훔친 것 자체가 파멸의 원죄인 것을 인정하듯.


‘보어는 원자 폭탄이 언제고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p420

결국,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이미 하나 만들었어’ p638

다시 묻는다.

1939년 ‘불’을 훔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는 훔칠 것이다. 모두가 훔치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좋지만, 남의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훔칠 것인가?


라비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오펜하이머에게 자신은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 ”물리학 300년의 정점”을 찍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p331


p.s. 책에서 라이너스 폴링(‘DNA’ 구조 해석 관련, 왓슨과 크릭의 유력 경쟁자), 심지어 살바도르 달리(최근 워커힐의 전시회 방문)의 등장은 내게 ‘카메오’처럼 쏠쏠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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