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사이 Aug 29. 2023

다름과 틀림의 경계를 허무는 따뜻한 신경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음악, 미술 등 예술에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놀랍다.

앞이 보이지 않거나 다리를 저는 등 몸의 일부가 불편한 사람을 보면 안쓰럽다.

나를 기준으로 ‘같음’에서 ‘다름’으로, ‘다름’에서 ‘틀림, 부정’으로 줄을 세우고 감정을 대입한다. ‘다름’의 인정범위가 넓길 바라지만, 삶이 각박할수록 점점 편협해진다.

‘다름’과 ‘틀림’의 경계에, 이 책의 소재인 ‘신경학적 정신질환’의 사례를 놓아두고, 따뜻한 손길로 ‘다름’의 한쪽 끝을 조금씩 늘려본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책을 통해 신경학을 이해해 본다. ‘뇌의 특정 부위 손상과 신경의 기능 이상이 어떤 상호 작용을 하며, 육체나 정신의 어떤 차이로 나타나며,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분야’. 다만, 이 책은 무미건조하게 기술한 임상기록이 아니다.  


‘동물도 질병에 걸리기는 하지만, 병에 빠지는 것은 인간뿐이다... 좁은 의미의 병력 속에는 주체가 없다. 개인에 대해,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p10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무엇이?’ 뿐이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p11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시각인식불능증’의 예이다.

P선생은 음악 교사로서, 낭만적이고, 위트 있는 신사다. 그는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착각하기도 하며, 장갑을 ‘장갑’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p36

그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생활한다. 증세가 심해지자, 음악 선율이 그의 눈을 대신하고, 음악이 끊기면 어둠이 된다. 그의 삶을 관찰한 후 내린 처방은 ‘약’이 아니다.

‘음악 속에 파묻혀서 생활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음악이 선생님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세요’ p42


P선생이 추상성 강화의 사례라면, 쌍둥이 형제는 구체성 강화의 사례다.

쌍둥이 형제는 계산 능력이 없지만 ‘소수(1과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 놀이나 과거의 달력 날짜 맞추는 능력은 초인적이다.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호세는 도상성을 넘어 상상력과 창조성에 이른 수준으로, 사물을 보는 순간의 강렬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다.


저자는 호세의 ‘세상과 가늘게 이어진 내면’을 마주하며 안타깝다.  

‘무엇이 그를 난폭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괴로운 심정이나 내심의 욕구를 직접 표현할 수 없어 고민하던 영혼이 구원을 청하기 위해 내지른 단말마적 절규였을까?’ p366


남들과 ‘다른’ 인간에 대해, ‘결함’이 아니라 또 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저자는 너그럽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p305


히포크라테스는 ‘뇌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을 관장하는 기관’이라 했다.

지성이 감성보다 우선하며, 지성의 기본값이 높게 요구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규칙이 있는 사회 시스템에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지성’을 부인할 수 없다. 무법지대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성이 부족하다고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가둘 수는 없다. 저자는 사회가 일종의 정신병자로 치부할지라도, ‘병’이 아니라 지성보다 감성이 우선하는 ‘사람’으로 마주 본다. ‘병력’이 기술된 차트만이 아니라 사람의 ‘역사’를 찾아 진단하여, 세상의 비난에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감성’을 주목한다. 이로써, 감성은 의미가 되고 환자는 인간이 된다. 오히려 더 뛰어난 감수성의 ‘바보 천재’이기도 하다.


이 책의 다양한 신경성 증상 사례는 일관된 해석과 처방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의 따스한 시선만큼은 모두에게 향하고 있다.

인간을 ‘사물’이 아닌 ‘서사’로 보는 그의 눈빛은 “틀림”없이, 포용하는 세상을 꿈꾼다.


인간을 향한 따스한 온정과 진심 어린 관심에서 비롯된 온기가 느껴지는 책. 이런 따스함이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오펜하이머, 물리학 300년 역사의 정점을 찍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