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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n 06. 2023

희귀종 ’ 물고기잡이부엉이‘에 대한 집착의 의미

『동쪽 빙하의 부엉이』를 읽고

흰색 배경의 표지 왼편은 오래된 침엽수가 도드라져 있고, 오른쪽에는 침엽수 뒤편, 큼지막한 부엉이가 횃대 위에 앉아 독자를 경계하고 있다. 발톱으로 움켜쥔 연어 때문인지, 주위 어딘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컷 때문인지는 모른다. 수리부엉이와는 달리 몸집이 더 크고 귀깃이 바깥쪽으로 뻗쳐있어 투박하면서도 한층 우람하게 보이는 ‘블래키스톤 물고기잡이부엉이’다. 이 책은 2006~09년경 미국인 박사과정 학생이 그의 러시아 동료와 함께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찾아 러시아 연해주와 북동부 연안을 조사한 탐사기록이다.


러시아 연해주의 겨울은 혹독한 추위와 눈폭풍으로 탐사원을 고립시킨다. 봄이 다가오면, 얇아진 얼음막이 깨지거나 얼음 슬러리에 파묻혀 스노 모빌이나 트럭은 물론, 자칫 목숨도 위태롭다. 시베리아 호랑이가 마을 주민을 살상했다는 소식은 현장 답사를 공포로 만들기 충분하다.

‘사마르가에는 원시적인 이분법이 생물들의 존재를 좌우한다. 굶주린 자와 배부른 자, 얼어붙은 것과 흐르는 것,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p63

‘러시아 극동 지방의 현장 연구는 탐사와 지역 주민들, 날씨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이다’ p119


그러나, ‘물고기잡이부엉이’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저음의 이중창으로 유혹할 뿐이다.

‘부엉이를 찾으려면 인내심과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p42

처음 접근하는 방법은 단지 3가지를 찾는 것이다. 물고기 사냥을 위한 얼지 않은 탁 트인 강물, 부엉이 깃털, 둥지로 이용할 커다란 구멍이 있는 큰 나무.


2006년 4월 말, 주변색에 섞여 찾기도 어려운 암컷 부엉이와 둥지를 어렵사리 찾아내, 그 아래서 부엉이들의 울음소리를 넋 놓고 듣는다.

‘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부엉이들이 내 기척을 듣고 이 매혹적인 의식을 그만둘까 봐 침을 삼키거나 움찔하지도 못했다. 그날 밤은 길고 흥분되었다.’ p139

포획 방법조차 서툴렀지만, 동료들과 하나씩 개선해 나간다. 그 과정은 쉽지도 않고 시련도 많다.

‘부엉이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면 부족과 사후 비판, 그리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침체된 분위기가 일주일 넘게 계속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갇힌 데다 내 기분도 꽉 막혀 있었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연구가 덜 된 새를 내가 찾아내 비밀을 캐겠다고 생각했던 건 한마디로 오만했다’ p227


이들의 여정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꽤 고된 과정이었다’ p311


하나만 알고 가자. 희귀종을 연구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보전과 보호는 다르다. 보호라면, 종에 대한 연구는 필요 없이 해당 지역에 대한 벌목과 낚시의 전면금지를 로비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물고기잡이부엉이와 인간은 둘 다 수백 년 동안 같은 자원에 의존했다. 이제, 인간의 욕구와 필요는 높아졌다. 상생, 균형을 되찾기 위한 설득을 위한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러시아에서는 멸종 위기 종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가능하지만, 물고기잡이부엉이의 보전 계획을 세우기 위한 연구는 미흡했다. 이 연구를 통해 유효한 방법을 제시한다.


희귀종을 찾기 위한 미국인 학생과 러시아 조사원들의 협동은 국가 간 이념을 뛰어넘는 위대한 자연 보전 활동으로 가슴 벅차다. 조사과정의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곳곳에서 만나는 인연의 인생이야기는 마치 지치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가자는 듯 다독인다.

자연과학자의 한 생물종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정은 연해주의 흰 눈처럼 순수하다. 목표를 향한 과정은 도처에 널린 갈라진 얼음 틈새와 느닷없는 야생곰의 출현처럼 불측의 고난길이다. 들은 적도 없는 ‘부엉이’ 임에도, 그 열정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희귀종의 멸종이 곧 인류의 미래를 경고하는 위험지표이며, 그것의 보전이 인류의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집착이 대의를 위한 것일 때 또는 대의로 이어질 때 숭고해지는 것일까. 덤으로, 삶의 방향도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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