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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l 28. 2024

회사는 요지경, 감정과 이성 사이

소설로 쓴 전쟁의 서막

‘감정이 쌓이면 오해가 되어 상해를 입히고 이성이 쌓여야 이해가 되고 양해를 한다’

경험으로 얻은 내 회사 생활 철칙이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상하좌우로 얽혀 하나의 단위조직을 만들고, 단위조직이 뭉쳐 그룹, 사업본부, 그리고 회사가 된다.

20년의 회사 생활을 해 온 나는 조직 생활에 맞는 사람인가? 프리랜서나 작가, 자영업 등 자신이 1인 기업이 되지 않는 이상 조직 생활은 불가피하다.

조직은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얽혀 있으므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면, 한마디로 피곤하다.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나 입사하여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부터 내일이면 30여 년간의 길고 험한 여정 끝에 퇴직을 앞둔 사람도 있다.

회사의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잘 닦인 오솔길, 좌우가 똑같이 생긴 갈림길, 경사가 높아 험준한 비탈길이 눈앞에 펼쳐지고 저 멀리에는 높디높은 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자세히 보면 가까운 거리에는 선배의 손을 잡고 덕담을 나누며 동행하는 경우도 있고, 선배에게 등 떠밀려 가거나 끌려가는 사람, 선배도 없이 덩그러니 진흙밭을 걷는 사람도 있다. 난, 선배에게 등 떠밀려 진흙밭에 들어간 경우와 같다. 참 친절했던 동갑내기 선배는 기초적인 업무를 가르치고는 1개월 후 전근 갔다. 그때부터 모든 것은 홀로서기였다.

단위조직(파트 또는 팀)은 개발 테마가 같은 집단이지만, 결국 회사는 조직생활을 선택한 인생들이 오를 산의 종류와 다름없다. 산을 향해 열심히 가다가 이 산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 깨닫느냐에 따라 다른 산으로 옮겨 갈 수 있고, 아니면 등산은 그만두고 나 홀로 트래킹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지금 내 주위에는 문을 열고 함께 들어왔던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산이 맞는지 따져보았다기보다는, 여기서 방향을 바꿀 용기가 없는 것일지 모른다. 두려웠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했다. 떠난 자들을 흘겨보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적어도 한 번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지금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옳았을 수도 있다.


20년을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을 했고 사람을 만났다. 아직 끝난 여정은 아닐 테지만,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들은 잘 지내는가?

특히, 다툼이 있었던 사람들의 신상이 궁금하다. 다툰 시기는 늘 혈기 왕성했거나 반대로 심신이 미약했던 시절이었고, 원인은 감정이었다.

20년간의 산행은 다리 근육을 키우고 폐활량을 늘리듯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 무심해져 가는 성격 탓도 있지만 약 효과도 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감정은 불필요하다. 감정이 섞이면 대화할 수 없고, 일도 진행할 수 없다.


한편,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성인이다. 경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신입 사원을 뽑지 않는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역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럼, 평균 나이는 40대를 훌쩍 넘긴다. 대다수는 결혼해서 초등학교 자녀를 두거나 또는 둘째를 갖는 경우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부모로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성인이다. 그래서 99% 참고 다닌다.


그런데, 마주한다. 감정을 앞세우는 나이와 몸집만 성인인 자들을. 자존심이 쌓여 자만심이 되고, 자기 방어직 기질이 단단해져 배타적 공격성으로 진화한 사람들이다. 자존과 자만 사이, 방어와 공격 사이가 허물어진 자들을.

역설적으로 이들을 상대하면, 나는 배려에 앞서 더욱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논리적인 사실관계 또는 주관적이지만 최대한 감정이 배제된 제안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폭발한다.

이성과 감정의 끝없는 평행선이 시작된다.


[현재 시각 11:55] 곧 점심시간이다.

너 1 : (수신인 다수) 자료 취합했고, 이후 양식을 간단하게 임의 수정했습니다. 내용 보시고 수정사항은 13:15까지 회신 주세요. 없으면,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메일에 파일이 없다. 수정전후 캡처 이미지만 있다.


나 : 파일 보내주시면, 내 담당 부분에 대해 수정해서 회신하겠습니다.


나는 오후에 중요한 회의 주최자라서 회의 준비에 급급했다.

13:20 답이 없다. 난 구두로 파일을 달라고 말한다.

13:30 단 두 글자와 함께 파일을 보냈다. ‘전달’

내용을 급히 수정해서 회신하며, 취합을 시킨 팀장에게 물어본다.


나 : 수정사항이 몇 가지 발생했는데, 제 담당 건의 우선순위나 목푯값이 바뀐 것인가요.

너 1 : 내가 취합 담당이라 임의 수정했는데, 팀장에게 직접 물어볼 거면 내가 왜 필요하죠? 직접 하시던가요.


?????


팀장 : 이건은 내가 ‘너 1’에게 지시한 것이니 사전에 협의하여 진행 바랍니다. ‘너 2’는 실적 잡기가 어려운가요?

나 : 팀장님, 사전 협의가 되지 않은 채 임의 수정을 하였고, 파일 첨부 없이 급히 회신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기 메일과 같은 취지로 말씀하시는데,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기 메일에는 팀장 외에 연차 15년 차 이상의 팀 멤버 7명이 들어가 있고, 이는 팀원의 과반이다.

팀에는 뒷소문이 무성하다.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린다. 그것도 회사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로 본다.

팀장이 회신을 하지 않는다. 그 자료 역시 임원 보고서로 급한 건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일은 바쁘다. 너희들은 얼마나 바쁜지 모르겠지만 내가 요청한 건을 빨리해 달라’는 도발로 시작하여 때마침 내가 출장 간 틈에 납기를 다음날로 맞추고 미회신자로 지목했다. 당시에는 나 말고도 서너 명이 더 있었으므로 웃으며 상대했다. ‘즐거운 금요일입니다. 출장이더라도 바쁜데 업무에 차질을 빚게 하여 송구합니다. 바로 처리했으니 기분 푸시고, 즐거운 주말 보냅시다. 그리고 이런 메일은 팀 동료를 교수대 위에 올려 공개처형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을 상대로 구두로 전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회신은 없었다. 그 후 간헐적 급발진은 팀원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나를 상대로 지목했다.

너에게 같은 방식으로 메일을 보내기로 한다.


난 항상 남보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책을 본다.

그런데, 오늘은 책을 보지 않기로 한다.

나 : (팀 전체 인원을 참조하여) 뒷말이 없도록, 아래 메일에 덧붙여 사실 관계를 정확히 말씀드립니다. 이번 메일은 ~ 연유로 발생한 일로, ~하여 송부했습니다.

너 1님) 앞으로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1. 지난 수년간 주간 보고/월간 보고를 참고하면 제가 일이 가장 많다는 점 알 수 있습니다. 업무상 배려를 부탁합니다.

2. 저에게 호칭과 존경어를 사용 바랍니다.(애초에 난 ‘너1’의 부하가 아닌 동일 직급이었고, 회사는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통일한 지 수개월째다. 나보다 3살 많다)

3. 사무실 내 매너를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두 앉아서 일하며 환기도 잘 안 되는 사무실이다. 쉬는 시간에 책상 위에 발 올리고 있고, 사무실에서 사적 통화하고, 휴대폰 알림 소리로 켜두고, 유독 슬리퍼 탁탁 끌고 다니는 것에 대해 내가 신경과민일 수 있어서 동료에게도 물어본 적 있다).

4. 팀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선배와 신입을 구분한 메일은 지양 바랍니다.

5. 저에게 메일을 보낼 때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문제 되는 부분은 근거와 함께 반박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도 뒷말은 하셔도 좋지만 엉뚱한 사람에게 이야기하여 곤란케 하지 말고 저에게 직접 말씀하세요. 모두 상대해 드립니다.

즐거운 금요일 보냅시다.


이어서, 한 통의 메일을 더 보낸다. 바쁘다는 그분이 하지 않는 일도 하나 지적해 둔다.

나 : 제 소중한 아침 30분을 할애하여 작성한 글이니 정독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난번 학회 참석 건은 왜 공유가 안 되는 거죠?


하나둘씩 출근한다. 표정이 변한다.

업무 시작까지 남은 시간 10분, 난 책을 보기 시작한다.


부사수가 커피 한 잔 하자고 한다. 나보다 8살 어린 동료가 불안해한다. 지금까지 알던 사수와는 다른 모습이라 불안하단다. 끝까지 밀어붙여 ‘너 1’을 다치게 할까 봐 정말 무섭단다. 내가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너 1’을 위해 나를 가로막는다. 걱정하지 말라고, 우린 어른이잖아. 분명, 따로 이야기하자고 회신할 거고 그럼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면 돼.


아니면?

네 걱정이 현실이 되는 거지.

부사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당연히 이야기하자고 하겠죠?’


대폭발이다. 바로 전체회신으로 메일이 시작된다.

너 1 : 귀찮고 대응할 가치도 없는데, 오해할까 봐 회신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호칭을 붙일 생각이 없어요. 그럴 가치가 없거든요.

이하, 내 메일의 단락마다 반박을 했다. 모든 반박이 파란색 글씨로 쓰인 ‘감정’이었다.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감정 문장들 뒤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표정의 한 문장이 반복하여 복사되어 붙어있다.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는지?’

당신이 얼마나 잘났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지 마시죠.

그리고, 학회 참석은 다른 사람(너 1보다 한 살 많은 선배 ‘너 3’)도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나에게만 이러는 건 겁쟁이라서?


전체 메일이 하나 더 와 있다.

너 1 : 자격지심인가? 당신처럼 나를 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30분? 그런 식으로 평소 깐죽거린 이유가 있었군요. 이런 걸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공식적인 깐죽이가 된 나는 흥분하지 않는다. 일단 바로 회신한다.

나 : 대응할 가치도 없는 메일에 회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를 호칭할 일이 없길 바랍니다.


두 번째 메일에도 회신한다.

나 : 자격지심이요? 깐죽거렸다고요? 어딜 봐서 평소 깐죽거렸다고 하시는 것인지요? 어떤 근거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자격지심의 의미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이번엔 너 3이 나를 밖으로 부른다. 너 2는 부사수에게 따져 묻는다 ‘날 저격한 거지?’.

걱정스러운 표정의 너 3과 이야기하는 중에 부사수가 불쑥 찾아온다. 너 2가 자꾸 따져 묻고 메일도 보냈다고. 너 3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장이 포함된 너 2의 메일에 회신한다. 그리고, 재택근무 중인 너 2에게 메신저로 바로 말한다.

‘너 2님,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요, 방금 보내주신 메일로 해결됐습니다’

‘그런 일은 부사수 말고 저에게 직접 말씀하세요’

부사수에게는 해결됐으니 신경 끄라고 말한다.


팀장에게 전화가 온다. 사람 없는 곳에서 전화받으라 하신다. ‘왜 그러는 거지?’

‘글쎄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이번에 저를 지목하였고, 그의 방식대로 회신했습니다만 이런 꼴이네요. 저 역시 회신 메일에 정말 놀랐습니다. 면목없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알았다며 전화의 주요 용건인 다른 화제로 돌리더니, 마지막에 ‘이제 그만하자?’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 난 팀장을 존경한다.


난 메일을 쓴다. 팀장과 너 1을 제외한 팀원들이다.

나 : 먼저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너 1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가 상처를 준 것 아닌가 송구스럽습니다. 팀장님 지시도 있으므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즐거운 금요일에 죄송합니다.


물론, 평소라면 ‘무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과연 이대로 끝일까?

내가 만약에 여기서 물러서면,

난 팀장부터 가장 어린 20대 중반 사원까지 그들 모두에게 내 20년간의 회사생활에 대한 모욕과 인신공격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건 씻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아무 말 없이 웃고 있는 내게 부사수가 걱정하며 점심을 산단다. 밥 먹는 내내 충고하고 조언한다.

‘제가 사수님을 잘 알아서 그래요. INFP가 역치는 높은데 돌아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안다고요. 그래서 제발 참으시면 안 될까요’

이 녀석은 뭐든 MBTI다.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난 부사수에게만은 너무 미안하다고 말한다.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점심을 먹고 오니, 너 1은 집에 갔다고 너 3이 말해준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울듯 말듯한 표정이었다며.


너 3 과도 못다 한 이야기를 한다. 말을 잘 못 잇는다. 나에게 전적으로 동감해 주고 자신에 대한 너 1의 또 다른 사례도 밝힌다. 그런데, 너 3은 특이한 지점을 우려한다.

‘이러한 메일이 앞으로 모방사례가 될까 봐.’

난 말한다. 그럴 깡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저처럼 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혹시 그렇다 해도 문제 될 건 없다고.

대답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혹시 너 3에게도 그럴까 봐?


퇴근할 때까지 많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구두 회의를 마치고 동료들에게 웃으며 퇴근한다.

동료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해맑은 표정인 너 1의 부사수, 내 시답지 않은 농담에 피식 웃는 내 다른 부사수 형님 등 속은 모르지만 겉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린 부사수만 평소와 달리 퇴근길까지 졸졸 따라온다.

‘괜찮으신 거죠? 주말 푹 쉬시고 기분 좋게 보내세요.’

난 웃으며 답한다.

‘너 왜 이러냐.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


시작한다.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내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치욕을 씻기 위해.

やられたら必ずやり返す、倍返しだ。


*어디까지나 소설인 점, 분명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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