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 중 하나였다면?
20여 년간 같은 공장지구 안에서 생활하던 협력업체가 사라졌다. 같은 지붕 아래에 사는 두 형제처럼 근무복 색깔만 다를 뿐, 갑을 관계가 아닌 상생 관계로 생각했다. 잿빛 근무복을 입고 무리 지어 다녔지만, 식당, 구내편의점, 주차장, 직원쉼터는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눈에 익었다.
지난달 몇일부터였는지는 모른다.
회의를 하러 다른 건물로 이동할 때면, 평일 한창 근무시간인데도 건물 안팎의 쉼터나 편의점에서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두세 명씩 모여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북적북적, 사람들이 오손도손 이야기 꽃 피우니, 무미건조한 공장에 생기가 돌듯 나 역시 유쾌해졌다.
그리고, 이번주가 시작되던 날 모두 사라졌다. 쉼터는 텅 비고 회사 내 도로는 한산했다. 협력업체는 도산했다고 한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분투했지만 코로나가 휩쓸면서 치명타를 입었던 것이다. 우리도 매출이 줄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솥밥을 먹는 형제들이 이렇게 한 순간에 사라질 줄은 몰랐다.
텅 빈 쉼터 의자를 바라본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들의 입가에 아무렇게나 말풍선을 그려 넣는다.
‘넌 어떻게 할 거냐’
‘난 학교 가려고’
‘난 아직도 모르겠어. 쉬면서 생각해 보려고’
‘이 나이에 어디서 받아줄까. 아직 아이도 어린데.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넌 아직 솔로잖아. 여기저기 갈 곳 많을 거야’
‘난 결정 났는데, 걱정이야. 급여가 너무 낮아’
‘아.. 어떻게 사냐’
‘난 퇴직금으로 주식이나 해야겠다’
‘넌 좋겠다. 부모님 가업 물려받으면 되잖아’
‘난 아직 와이프에게 말도 못 꺼냈어’
‘우리 같이 창업할까?’
만약에, 내가 그들 중 하나였다면?
3개월 후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상상해 본다. 파업이나 고용승계의 여지도 없는, 사업종료다.
첫째, 이직을 한다. 둘째, 창업을 한다. 셋째, 취직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넷째, 전업투자가가 된다… (백열한번째… 아내를 내보내고 뒷바라지한다)
운신의 폭이 좁다. 당장 먹고 살 생활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독서나 글쓰기는 삶에서 지울 수밖에 없고 결국 책방 셔터맨의 꿈은 사라질 테다. 뚜렷한 답이 없어 소름이 돋는다. 이 나이에 누가 경력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월급을 줄까. 적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삶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두렵다. 내 삶도, 가족의 삶도.
IMF경제위기,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운 좋게 스쳐 지났다. 물론, 내게 경제활동이란 ‘저축’ 일뿐, 부동산 활황과 코인 열풍에 난데없이 벼락거지가 되기도 했다. 비록 회사에서 하는 일이 신성하다고 믿진 않지만, 먹고살기 위해 내 시간을 팔아 환전을 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이왕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데 즐겁게 하자는 마음으로 살뿐이다.
그런데, 문을 닫는다고?
‘유비무환’ ‘교토삼굴’은 현업에 집중하지 않으며 외도하려는 마음을 예쁘게 포장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짓궂은 신의 장난과 같은 순간이, 안이한 생각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던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만약에’란 이름의 부질없는 부사는 머릿속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유리 파편처럼 편두통을 일으킨다.
‘걱정거리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확률의 장난질에 놀아날래? 너에게 현실이 되는 순간 뒤늦게 깨닫겠지. 그건 10%가 아니라 100%였다고’
운전대를 잡은 퇴근길, 늘 그렇듯 앞 뒤로 꽉 막혔지만 흥겹게 노래를 듣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면, 시원하게 뚫린 보다 정체된 도로가 더 좋다.
어디선가 울리는 응급차 사이렌 소리. 룸미러를 보니, 멈춰있던 차들이 힘겹게 좌우로 밀착하고 있다. 번쩍이는 초록 경광등이 점점 다가온다. 나 역시 서둘러 왼쪽으로 최대한 붙인다.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낼뿐 아니라, 구급대원도 다급하게 비켜달라 호소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막힌다.
오랜 서행 끝에 현장을 마주한다. 심하게 파손된 차량들-경차와 SUV, 경량 트럭, 승용차들-과 레커들이 뒤섞여 있다. 응급차는 이미 없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만나러, 또는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학원을 가거나 술 한잔 하거나 단잠에 빠질 생각에 운전대를 잡았을 사람들.
또는 낮밤이 바뀌어 이제 출근 중인 사람들. 각자의 삶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맹렬히 달려와 바로 그곳에서 부딪히고는 전혀 생각지 않던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만약에, 내가 그들 중 하나였다면?
코로나로 닫혔던 문이 열리자 들뜬 마음으로 모인 정열적인 청년들도,
좁고 낡았지만 가까스로 모은 돈으로 ‘내 집’이라는 기쁨과 희망을 안고 얼마 되지 않은 짐을 옮겼던 사람들,
이국땅에 들어와 사방이 막히고 소음 가득한 공장 안에서 땀에 젖은 눈가를 더러운 손으로 훔쳐내고는 가족사진을 꺼내 보던 노동자들,
사람과 자전거도 오가는 일방통행 도로 위 만취한 채 달려가는 차량 앞에서 음악을 듣고 가던 여학생. 그리고 충돌한 차량 바로 앞, 길가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던 배달원.
무너져 내리기 직전 아파트 공사장 아래 보도를 걸으며 마트를 향하던 어르신.
차가 돌진해 올 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학교를 마치고 해맑게 친구와 손잡고 학교옆 갓길을 걷던 아이들.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사할 시간조차 용납되지 않은 사람들이 환영이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만약에, 내가 그들 중 하나였다면?
‘만약에’의 무게에 짓눌린다.
‘만약에’를 끌고 와 희망과 붙이기에는 늦었다. ‘만약에 로또에 당첨된다면?’
바로 이어진다. ‘만약에 당첨되고 심장병에 걸릴 수도, 강도를 만날 수도, 운명이 돈과 함께 불행을 안길지도’
안드로메다로 간 정신을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을 나온다. 한산한 사내 도로를 걷는다. 길가에 핀 작고 노란 괭이밥을 보고, 홀씨 날리고 가냘프게 흔들리는 민들레도 본다. 선선한 바람이 일자, 4월에 눈꽃 날리던 벚꽃나무가 이제는 푸른 잎을 파르르 반짝이며 말을 건넨다.
‘만약에’의 마법에 홀릴 필요는 없다며.
‘만약에’를 ‘반드시’로 막아낼 이유도 없다며.
우리가 여기에 꽃 피우고 흔들리는 순간 네가 찾아와 알아주듯, 현재를 소중히 살다 보면 운도 네 손을 잡아주리라고.
그땐 일어날 일이 일어날 뿐, 그 어떤 가정도 쓸모없다고.
그러니까, 아쉬움 없도록 현재를 끌어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