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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ul 25. 2024

새벽의 미궁 속에서 테세우스를 기다리며

벗어날 수 없는 역사적 불면증

내 목을 조르던 이불을 힘겹게 밀쳐낸다. 눈꺼풀만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야광 별들은 사라졌다. 어차피 안경을 벗고 누웠을 때 흐릿한 잔상만 남았을 뿐, 그것이 별모양이라는 것은 내 기억이 말해준다. 왼손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는다. 매끈한 옆면 버튼을 누르자, 갑작스러운 빛에 눈이 부시다. 4시 16분. 여기저기 세워 둔 알람 시계들은 6시에 나팔을 불 터였다. 화면 속 숫자가 불길한 냉기를 내뿜듯, 돌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일어난다. 충전기가 꽂힌 콘센트는 침대 발치에 있었다. 케이블을 찾아 스마트폰에 꽂는다. 다시 침대에 눕는다. 아직 내 몸이 남긴 잔열이 포근하다.

이불로 몸을 감싼다. 발목이 드러나지 않도록 무릎을 세워 끌어당겼다가 발꿈치로 이불을 누른다. 양손으로 이불 안쪽을 잡아당겨 몸에 꼭 붙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이불속에서 왼손을 빼내어 왼쪽 귓등을 접는다. 고요하고 아늑한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식은땀에 이불을 벗어던진다. 어둠 속에 커질 대로 커진 동공이었지만 벽에 붙은 에어컨 패널의 초록빛만 부옇다. 꿈을 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팔을 뻗어 에어컨을 켠다.

‘띠리리리링’ 한 음절씩 높아지는 경쾌한 음이 방안에 울린다. 곧이어 천장에 달린 에어컨의 냉기가 온몸을 훑는다. 눈을 감는다. 머리맡을 더듬는다. 스마트폰을 찾아 집어든다. 4시 19분. 무릎까지 밀쳐냈던 이불을 다시 끌어올린다. 아직 한 시간 넘게 잘 수 있다며 안도한다. 다시 눈을 붙인다.


한동안 뒤척인 듯하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연다. 밝은 빛에 익숙해질수록, 손가락이 화면 위를 오갈수록 정신이 돌아온다. 얼마간 쓸데없는 기사 제목들을 밀어 올리다 흥미를 잃고, 다시 머리맡에 던져둔다. 찬 바람에 머리가 서늘하다. 에어컨을 끄려고 머리 위로 팔을 뻗는다.

아무리 팔을 뻗어도 벽에 닿지 않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든다. 왼손으로 머리맡을 더듬는다. 스마트폰이 없다. 순간, 현관 쪽 자동 센서등이 켜진다. 왼쪽 벽면에 형체를 알 수 없는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신이 번쩍 든다. 허둥대며 일어나 눈을 비비고, 협탁 위 안경을 찾는다.


벽면 옷걸이에 걸린 셔츠다. ‘젠장’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스마트폰은 침대 발치에서 충전 중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4시 3분. 붙박이장 옷걸이에 걸린 셔츠를 옷장 속에 넣는다. 협탁 위에 안경을 벗어둔다.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놓는다. 이불로 온몸을 감싼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 포근하다. 때마침 자동센서등이 꺼진다. 천장을 보니 야광 스티커 빛무리가 부옇다. 그것은 분명 별모양이었다.


불면의 새벽은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커튼을 친 창 밖에서 희붐한 빛줄기가 스며들 때까지는.


다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눈꺼풀이 쓸고 간 눈자위가 까끌거린다. 안경을 쓰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낯선 모습이 충혈된 눈을 한 채, 허탈한 미소를 짓는다. 졸음이 쏟아지지만, 누우면 다시 돌아갈까 두렵다. 책상 앞 의자에 주저앉는다. 5시 18분. 에어컨에서 불어 온 냉기에 몸서리친다. 옷걸이에는 셔츠가 걸려 있고, 스마트폰은 케이블에 꽂혀 있다.


에어컨을 끈다.

조금만 더 자자.




벌떡 일어났다.

황소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창 밖 햇살에 방 안이 환하다.

8시 15분. ‘헉’

세수를 하고 옷을 걸치고 뛰쳐나간다.


새벽의 미궁 속에서 난 언제나 제물로 던져진 어린 소년이었다.

지금의 나는 진정 현실을 사는 것일까?

미궁 속에서 쫓기다 지쳐 잠든 것은 아닐까?

지친 몸과 정신으로 가까스로 보낸 오늘 하루는

공포에 질려 잔뜩 웅크린 채 청한 쪽잠일지 모른다.


째깍째깍..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의 미궁에 던져진다.

.. 깍째깍째.


아, 테세우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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