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죄의 삯은 멸종이라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공기가 물기를 잔뜩 머금으니 숨쉬기조차 버겁다. 건강을 위해 걸어야 하지만 건강을 위해 걷지 말아야 하는 모순 속에서 잠시 갈팡질팡하지만, 끝내 결정은 머리가 아닌 마음이 한다.
건물 출입문을 열고 양산을 펼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넘실대는 사무실을 뒤로하고
오직 마음에 이끌려 힘겹게 나선 산책 길이건만, 늘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친구가 없다. 너무 오래 무심했다. 이미 떠나버린 친구가 있을 리 없다.
그때 너에게 용서를 구하며 슬퍼했다.
너는 늘 바람을 기다렸지.
자유의 땅으로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 달래며.
단지, 홀씨 흩날려 미지의 터전에 살포시 내려앉길 원했어. 어딜 가더라도 좋다던 아름다운 친구여. 운이 좋았던 너는 가로수 밑에 자리 잡았고, 운이 좋았던 나는 가로수 옆길을 거닐다가 너를 만났지. 나를 보며 자그맣고 동그란 하얀 손 높이 들어 흔들며, 샛노랗고 예쁜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었어.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흉폭한 칼날이 굉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넌 외쳤지.
왜. 왜냐고.
너희의 길을 막은 것도 아닌데,
단 한번 불평한 적도 없는데 왜 이토록 잔인한지. 콘크리트, 보도블록으로 대지를 뒤덮어도 겨우 빈틈 찾아 한숨만 돌릴 뿐 불평한 적 없는데. 짓밟는 것도 모자라 난도질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종간 제노사이드를 멈추라고 부르짖었다.
도대체 왜.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의 눈에 거슬려서? 걷지 못해서? 말을 하지 못해서? 홀씨 흩날려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넌, 보도블록 위에 너부러져 헥센알 내뿜으며 절규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한줄기 바람에 흩날린 것은 홀씨가 아니라 찢긴 잎새뿐.
나는 들었다 친구여.
너의 짙은 비명을. 너의 핏빛 저주를.
저주하리라. 인간이여.
너희를 물과 흙과 나무로 뒤덮어 버리리라.
흉측한 인공물 모조리 제물 삼아, 자연의 부활을 탄원하리라. 어떤 변명도 쓸모없다. 너희들의 오만을 잠재우고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하리니.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너희의 원죄요, 너희의 소멸이 유일한 속죄이리라.
인내심이 다한 자연은 들끓어 끝내 복수하리라.
아니, 되돌리리라.
부자연으로부터 자연으로.
정녕 들리지 않는가.
바람에 실려오는 광기 어린 저주가.
민들레의 비명이.
8월의 햇살은 더욱 뜨거워진다.
빗방울을 바라기도 두렵다.
저주를 품은 폭우에 쓸려갈까 봐.
민들레 웃어주던 가로수 옆을 지나 발걸음 서두른다. 가쁜 숨 몰아쉬며 대피소로 돌아온다. 손이 데일 듯 뜨거워진 양산을 접는다. 등줄기 따라 흘러내린 땀은 쉬이 마르지 않는다.
하릴없이 반복되는 학살의 죄는 분명 뜨겁게 쌓여간다.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p.s. 들꽃에 해박하신, 존경하는 ‘한밭골샌님’ 작가님 말씀 덕분에 민들레를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말씀 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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