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된 아이
아이가 말대꾸를 한다.
시간을 먹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얼굴과 몸도 하루가 다르게 다듬어진다.
쪽쪽이를 하고는 나를 바라보며 비둘기를 가리키던 작은 인형이 어느새 큼지막한 소년이 되었다.
나 역시 시간을 먹었지만 양은 같아도 질은 다르다.
이미 새겨진 시간의 주름은 깊게 파여 보톡스를 맞아도 일시적이다.
거울 속 미간주름을 노려본다.
오기와 오만, 자만을 열정과 패기란 이름으로 객기 부린 흔적이다. 지울 수 없는 흔적.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진리였다.
내 이기적인 주름 하나를 아이에게 옮겨 새길까 겁이 난다. 그러나 주름은 시나브로 말과 행동으로 조금씩 옮아간다.
‘아빠도 그러잖아’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아니라면, 귀는 열고 입이라도 다물어야 한다.
아름다운 순백의 도화지에 그려나갈 그 어떤 예술적 행위도 모두 아이의 권리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빠르면 10년 뒤- 그때의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흔적이 있다면, 내 탓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떤 변명과 명분을 붙여서라도 끌고 가면 된다. 그러나 분명 내 남은 시간이 적을 테니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집착하지 말자. 집착의 크기만큼 못난 널 닮을 테니.
지구가 태어난 후 46억 년 중 인류가 태어난 것은 20만 년 전, 지구의 나이를 하루(24시간)로 치면 단지 3.8초. 우주가 태어난 후 138억 년을 하루로 치면 단지 1.3초.
100년을 함께 산다 해도 우주라는 하루 중 0.0006초에 불과한 찰나의 순간.
어른과 아이는 뒤섞인다.
업보일지라도
피투성(被投性)일지라도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짐을 함께 짊어지는 어엿한 한 명의 인간일 뿐.
아이 앞에 어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