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으로 쓴 ‘초등자녀를 둔 부모 생각’
등장인물 : 부모 A, B, C, D(B의 남편), 초등고학년 d(B, D의 아들)
세 가족이 함께 여행 중이다. 세 가족 모두 초등고학년을 자녀로 둔 3인 가족이다. 밤 9시, 부모A, B, C, D가 숙소 거실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 놀고 있고 부모 E는 샤워 중이고 부모 F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A :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이야. 우리 아들이 국영수는 참 잘하는데, 갑자기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적성에 맞는 것 같지 않지만 얘가 이러네. 좋아한다면 늦기 전에 맞춰서 커리큘럼 밟도록 도와주고 싶어. 과연 적성에 맞는지 값비싼 진단평가 하고 결과 기다리는 중이야. 남편은 이런 이야기 꺼내면 예민해지더라고. 오히려 내가 극성맞다고. 아이가 자유롭게 겪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지 뭘 어떻게 지원할 수 있겠느냐고.
솔직히 내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항상 아쉬웠던 지점이 바로 부모님의 관심과 지원이었거든. 내가 아나운서나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조금 더 귀 기울여주고 도와주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시도조차 못해서 지금처럼 후회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난 정말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어.
B : 우리 아들은 아직도 음미체만 듣고 있어. 뭐라도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를 말해주면 좋겠네. 남아예술학원이나 태권도장을 끊을 수가 없어. 너무나 좋아해서 끊을라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였지. 그래서 태권도는 3급까지만 하자, 예술학원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자고 달래기는 하는데 혹시 아이가 여기에 재능이 있을까 궁금해서 학원 원장님과 상담도 했지. 그런데 그 분야에 특출 난 재능은 없다는 거야. 할 수 없었지.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하니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게 할 수밖에.
(옆에 앉은 D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남편은 음미체 학원 줄이고 이제라도 국영수에 집중하라고 하지. 나라고 고민 안 해봤겠어? 성질내며 이야기해 봤자 요즘 애들 입시제도 하나 알지도 못하는 남편은 아이를 상대할 때 우유부단하기만 하지 도움이 안돼. 그러니까 아이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지. 자기가 왜 아이한테 무시당하는지도 몰라. 그러니 엄마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아이 적성? 아직은 모르겠어. 마흔이 넘어서도 헤매는 남편들 보면, 초등학생에게 적성 찾기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
C : (맥주 한잔 마시고는) 난 모르겠어. 우리는 너희들처럼 아이 적성에 관심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민망하네. 알다시피, 우리 부부도 각자 일하고 취미활동이나 관심사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아이와는 자주 함께 여행 다닐 뿐이지. 물론 부모님이 평소에 챙겨주시고 교육은 더 잘 아셔서, 필요하다고 하는 학원은 다 보내주고 있어. 우리도 그랬잖아. 아침부터 새벽까지 정규교육과정에 맞춰 열심히 공부했어. 대학교도 수능점수에 따라 등 떠밀려 가고 졸업하면 전공 따라 취직해서 여기까지 왔지. 이게 적성이라면 적성일까? 난 지금 일을 좋아하지는 않아. 적성이라는 것도 그럴지 모르지.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능력, 자격. 그런 의미로 볼 때, 적성과 천성이 일치하거나 최소한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운이 좋은 거지. 결국, TV에 나오는 몇몇 신동들 빼고는 대부분 공부하면서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든 아니든.
A : 그렇지.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았지. 그냥, 요즘은 교육의 기회조차도 부익부빈익빈이 너무 심하니까 학군을 옮겨 다녀야 하나 고민할 정도야. 경제력이 안되는데도 뱁새가 황새 쫓듯, 교육을 시켜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워. 더욱이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말하는데, 늦지 않게 길을 열어줘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거든. 의사가 되든, 야구 선수가 되든 다들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어떤 형태로든 시작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내 욕심일까.
B : 욕심 아니야. 요즘 정말 그렇더라. 나는 아이한테 너무 미안할 정도야. 재력이 기회가 되고 다른 출발선에 놓이게 하지. 로또 당첨이 되지 않는 한 이사를 가기도 어려우니, 원. 부모 잘못 만나서 아이 적성에 한계를 긋는 것 같다니까.
C : 요즘 초등학교까지는 여기서 다니다가 중학교부터 옆도시로 이사 간 대. 그쪽이 교육열도 높고 학원 강사 수준도 높아서 명문대 진학률까지 높다는 거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솔직히 여기 아이들이 태평한 건 사실이지. 우리도 옮겨갈 생각은 있어. 명문대라도 나와야 나중에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나라잖아.
A : (부러운 듯한 눈빛으로) 역시 돈 잘 버는 부모들이야. 할 수 있다면 해줘야지.
(잠시 이야기가 멈추고 건배를 한다)
D : 그런데, 요즘 학교 폭력이나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행동, 심지어 명문대 출신들이 기득권이 되어 나라를 끌어가는 현실을 보면 크게 걱정되지 않아? 미래가 암울해. 인성, 감성, 공감, 연민도 없이 오로지 암기력만이 우대받는 구조야. 기회도 불공정한데 정의조차 없어. 수능이라는 서열 싸움에서 한번 밀리면 평생 낙인찍혀버리지. 그리고 휘둘려. 마치 기득권의 존재 이유로써 존재할 뿐이지. 기득권의 자리는 적은 데다 대물림되고 있으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밑바탕 존재가 되고 말겠지. 괜히 저출산이 심각한 것이 아니야.
한편으로는, 과연 지금 시스템이 오래갈까? 행여 인공지능이 자리를 잡으면 인간 지식의 축적을 선례로 활용하는 직업은 사라진다고 하잖아. 사무직은 말할 것도 없고 판검사, 의사, 작가까지 소멸하거나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겠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아이들은 따뜻한 감성, 공감능력이 더 중요한 세상이 올 것 같아. 그랬으면 좋겠고. 한국 하면 ‘정’이었는데 뾰족한 ‘감정’만 넘쳐나고 있어.
B : (D를 흘겨보며) 너나 잘하세요.
A : 그러면 그것도 적성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왠지 암기력과는 다른 형태의 적성이나 능력으로 인정되면, 인문학, 윤리학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겠죠? 한국은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C : 저도 확실히 요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인성은 큰 문제라고 봐요.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는 손도 쓸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답답합니다. 학원 이외에 자유롭게 풀어주는 편인데 그 시간에 게임이나 유튜브만 보고 있으니 과연 체온을 느껴가며 ‘인정’을 배울 수 있을는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양주를 가지러 냉장고로 향한다)
D : 그렇죠. 이미 시스템은 수리나 단순 업그레이드 수준으로 고쳐지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선택은 두 가지겠죠. 뒤집어엎거나 맞춰 살거나.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 한국 학생들 학업성취도가 전 세계에서 1위인데 대학교 이후로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더라도 공부의 목적이 대학 진학에 맞춰있죠.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사회 시스템에 적응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죠. 꿈은 공부의 원동력이 될 뿐이죠. 적성은 시스템에서 특정 위치를 배정받은 ‘나’의 효율일 수도 있고요. 어쨌든, 사회의 요구가 학생을 끌고 간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한국은 수능이라는 시스템으로-지금 각종 수행평가로 괴롭히지만 이 역시 ‘변별력’으로 포장된 ‘줄 세우기’의 수단일 뿐-국영수를 잘하면 기득권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잘한다’의 격차는 엄청나겠죠.
하고 싶은 말은, 적성이 국영수에서 벗어난 것 같다면 한국이란 시스템에 얽매이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거예요. 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국어 공부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길은 있다는 거죠.
B : 이런 말을 들었어. 나사에서 일하는 박사 한 분이 자녀를 둔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엄마가 물어봤어. 우리 아이가 나사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는데 성적이나 영어 소질 때문에 울적해하는 아이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지 말이야.
“나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합니다. 물론, 화려한 수식을 화이트보드에 그려내며 마치 천재처럼 보이는 박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 광물이나 천체를 예쁘게 담아내는 포토그래퍼도 있고, 우주용품 디자이너, 마케터도 있습니다. 테라포밍시 거주지 설계자, 식물 전문가도 있고요. 정신상담사도 있습니다. 나사라는 조직 안에서 대화를 해야 할 테니 영어는 약간 열심히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주정거장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우주인들이 영어로 대화하잖아요? 솔직히 그것도 인공지능 동시통역으로 해결할 수는 있겠죠. 결국, 나사에 들어가는 길은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길을 그려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C : (자리에 앉아 잔에 양주를 채우고 B를 쳐다보고 마실 것인지 묻는 듯 병을 들어 올리며) 이야길 들어보니 갑자기 한국은 망해가는 나라 같은 걸? 한국에서는 아니, 세계가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자본을 물려주는 것이 답일지도.
D : 아무도 모르죠. 그래도 분명한 건, 고민 없이 이 미쳐버린 열차가 속도를 올린다면 어딘가에 처박히겠죠. 아니길 바라지만요. 저도 이 아이를 어떻게 도울지,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죠. 당장 우리의 10년 후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어디까지 해 줄 수 있을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분명 희생할 테죠. 희생에 따른 고통과 결핍은 누군가 자신의 것으로 메꾸어 주면서 자신은 더 크게 비고 마는 ‘폭탄 돌리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쩌면, 키워드로 자주 나오는 ‘각자도생’이 답일지 몰라요. 아마 사회 적응에 실패한 자식 세대는 집에 갇힐 가능성이 높아요.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정말, 모두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절실한 시대 같아요. 용기와 희망을 아이에게 찾으면 A가, 스스로를 돌보며 자본력에서 찾으면 C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부부는 아직도 고민 중이고요. 모르니까, 그동안은 책을 읽게 하고 세상을 보여줄 뿐이죠.
밤 12시,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며 D는 묻는다.
D : 아들, 무얼 할 때 제일 즐겁고 행복해?
d : 게임
D : 그럼, 게임만 하면서 살면 좋겠네. 그런데, 게임만 하면서도 살 수 있을까? 밥도 먹고 집도 구하고 옷도 사려면 돈을 벌어야 할 텐데.
d : 로또 되면 할 수 있어
D : 아들도 알지? 아빠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로또 했는데 아직도 안 되는 거 알지? 로또 안되면 어떡해?
d : 엄마아빠랑 같이 살면 되지
D : 아빠는 길면 15년 정도 더 벌지 않을까? 네가 20대 중반이면 아빠도 힘들겠는데? 독립해야 하지 않겠어?
d : 안 나갈 거야, 편의점 알바하면 되지
D : 편의점 알바?
d : 먹고 싶은 거 먹을 수 있잖아
이런 아이에게 B와 D는 아직 고민 중이다.
아이의 말 중에 힌트를 찾으려 애쓰며.
오히려, 아이가 입을 닫을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 사춘기가 다가온다.
이렇게,
모두가 고민한다.
Birth에서 Death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