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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Aug 21. 2024

가교톡의 탄생

가족의 교양을 함께 키우는 대화

2023년 1월 일본 동경대 교수가 쓴 글 <어른의 조건>을 읽고 크게 감명했다. 띠지 문구는 화려했다.

’지식과 경험, 사고와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는 과학사회학자x문학연구자의 도쿄대 교양 강의‘

한마디로, 이과 교수와 문과 교수가 협업한 후기교양과목으로 전공에 제한 없이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사회 문제를 각자의 시선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어른의 조건>일까? 어른의 조건이 교양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그렇다면 교양은 무엇인가?


감정을 분출하거나 느닷없이 질문 또는 반문하면, ’자네, 좀 어른이 되게나‘ 라며 빈축을 산다.

평정심, 분위기 동조가 자칫 점잖은 어른을 상징하는 듯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의문을 억누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뒷짐 지고 혀를 차기만 하는 자기 검열자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감정을 폭발시켜 싸워 이기라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라면 감정과 의문을 음미하고 소화시켜 공유가능한 형태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풍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고도의 사고 능력이 필요한데 이를 아울러 통상적으로 ’교양‘이라 부른다.

나아가 교양인은 전문가여야 한다. 정보와 사고능력을 응집할 수 있는 전문성의 ’핵‘에 뿌리를 두고 생각을 모으는 한편, 뻗어 나가야 한다. 통합적 사고, 통섭의 기초라 할 수 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자신만의 전문성으로부터 확장하여 논리적으로 드러내고 또한 상대방의 견해와 조율하는 교양인이 바로 어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신체적 어른, 졸업하면서 사회적 어른이라 착각한다. 대학에서는 오직 전공과목에만 매진함으로써 지식의 한계, 경험의 한계, 사고의 한계에 봉착한다. 교양과목은 학점 채우기용에 불과하다. 즉, 전문성을 갖춘다는 명분으로 교양과 멀어지는 모순에 빠진다.


여기서 저자들은 리버럴아츠, 단순한 일반교양이 아닌 후기 교양 교육을 제시한다. 전공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을 모아 ’타 분야 교류•다분야 협력‘의 장을 마련한다. 저자인 교수들은 화두를 던지는 안내자일 뿐이다. 화두를 두고, 서로 다른 전공의 학생들은 각자의 ’핵‘에서 바라보며  의견을 펼친다. 교집합 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의견들은 서서히 이해와 융합, 통섭의 접점을 향해간다.


학생들의 전공도 다양했고, 주제 역시 다양했다.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사회가 직면하는 문제들로 나와는 무관한 일부 전문가(?)의 일이 아니다. 즉,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과제이며 여러 분야의 어른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제1강. 표절은 부정인가?

제2강. 글로벌 인재는 정말 필요한가?

제3강.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 고유의 문제인가?

제4강. 예술 작품에 객관적 가치가 존재하는가?

제5강. 대리모 출산은 허용되는가?

제6강. 굶주린 아이 앞에서 문학이 유용한가?

제7강. 진리는 하나인가?

제8강. 국민은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는가?

제9강. 학문은 사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

제10강. 절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


책의 내용은 수업시간에 학생들 간 논의된 내용을 싣고 있다. 난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먼저 각 주제에 대해 나만의 견해를 적어두었고, 책을 읽고 난 뒤 독후감을 쓰면서 다시 한번 견해를 되짚었다.

‘아,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

’그쪽이 더 합리적이구나 ‘

’다른 전공인데 의외로 나와 의견이 같네’

교양 있는 ‘어른’에 대해 고민한 저자들의 노력에 크게 감탄했고, 이후에도 계속 펼쳐봤다.


그러던 중 1년을 훌쩍 넘긴 지금, 문득 의문이 들었다. 꼭 대학교 전공생들을 상대로 하는 후기교양과목이어야 하는가? 전문성이 꼭 전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을 상대로 ‘전기’ 교양과목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학교에서 어렵다면, 아이를 둔 가정에서 한다면 어떤가?

하브루타 교육과 비슷하지만 실생활에서 겪는 다양한 현상이나 피부에 와닿는 사회문제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과감히 시작한다.

때로는 AI의 조력을 받아 발제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참가자로 참여시키려고 한다.

자, 그럼 아들, 엄마, 아빠, AI의 가교톡(가족의 교양을 함께 키우는 대화, 교양으로 가족을 가교시키는 대화)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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